육상이나 수영처럼 누가 더 빨리(더 높이, 더 멀리) 움직이는가(던지는가)라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욕망과도 거리가 멀고,
축구나 농구처럼 발(머리)로만 손으로만 그물망 안에 공을 넣으면 득점이라는 기본적인 설명을 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야구를 처음 보는 사람은 1루 주자가 있을 때 볼넷이 나오면 윷놀이처럼 주자를 업고 가야한다고 추측하기도 하고,
2아웃 3루에서 타자가 깊숙한 땅볼 아웃 타구를 쳤을 때 3루 주자가 홈을 먼저 밟으면 득점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플라이아웃 타구 때 주자가 태그업(리터치) 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0년 두산과 삼성과의 경기, 뒤늦은 인필드플라이 선언과 18분의 경기중단을 거쳐 트리플 플레이(혹은 2사 1루)가 1사 1, 3루가 되었던 것은 심판, 선수들, 해설자도 고민하는 야구의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야구를 봅니다.
2008년 525만 명, 2009년 592만 명이 야구장을 찾았고, 2010년에는 겨우 전반기가 끝났음에도 405만 명이 넘는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응원팀 없이 야구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북을 치며 팀을 응원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선수, 좋아하는 치어리더 앞에 앉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야구를 즐기기 때문에 야구를 봅니다.
위압감을 드러내며 등장하는 홈런왕,
상대팀 투수의 기를 죽이는 관중들의 함성(가령 “이~ 승~ 엽~ 홈런”),
정말로 하늘을 날아 멀리 담장을 넘기는 타구,
109.72m를 사뿐히 뛰며 모든 시선을 독점하는 세레모니에 환호합니다.
만화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에이스 투수,
투수가 공을 놓자마자 전광판에 찍히는 151KM표시,
폭포수 같은 커브에 허공을 가르는 방망이,
3시간의 절반동안 모든 공격을 가로막는 한 손에 전율합니다.
15년간 9번의 우승으로 세상의 괴로움마저 잠시 잊게 했던 절대강자,
12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가을야구에 출연했던 명문구단,
http://blog.paran.com/law/35384705
‘7년만의 외출’로 가을야구를 보여주었던 역사상 단 두 팀(혹은 세 팀),
http://blog.paran.com/law/35354860
바로 작년의 혹은 18년 전의 우승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http://blog.paran.com/law/30453258
누군가에게는 공놀이일 뿐이고,
누군가에게는 만년 적자의 골칫거리 계열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그 만년 적자의 공놀이에 사람들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화, 드라마, 게임 속 인물들의 희로애락과는 다른 사전각본도 사후편집도 없는 공 하나에 죽고 사는 치열함, 절실함,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 뉴욕 양키스의 전설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일본의 유명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가 ‘H2’에서 표현했듯이, 야구는 타임아웃 없는 경기입니다.
즉 야구는 시간의 제약 없이 아웃 카운트와 볼 카운트로 진행, 구성됩니다.
이는 정밀한 기록의 단위가 된다는 점에서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라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주자 없는 상황에서의 12초룰 등 최소한의 제약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매 아웃 카운트와 볼 카운트는 공격 팀에게도 수비 팀에게도 일종의 턴이 됩니다.
(통상 양복을 입고 경기에 출장하며 그라운드 내로의 출입 자체가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축구, 농구 등의 스포츠와 달리,) 야구 감독, 코치는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수시로 혹은 계속적으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은 1루, 3루 주루 코치 등 야구의 코칭스태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의미의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모든 투구의 포수사인을 배터리 코치가 내는 팀이 있을 정도로, 턴 방식의 야구(12초룰, 투구 이후, 유주자 상황 등에서 실시간 방식과 결합됨)는 실시간 방식의 축구, 농구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벤치의 폭넓은 작전 지시를 허용합니다.
가령 야구의 매 투구가 (주자 유무를 불문하고) 5초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면, 타자에 따른 볼 배합과 수비시프트 지시, 복잡한 암호를 섞은 히트앤드런 지시와 그 철회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규정이 없는 이상 야구에서의 벤치의 폭넓은 작전 지시는 전통을 벗어난 비겁한 행위가 아니라 야구 그 자체의 것에 불과합니다.
작전이 많은 야구와 작전이 적거나 없는 야구(물론 작전이 없는 것도 작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는 선택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더욱이 야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입니다.
홈런을 몇 개, 안타를 몇 개 기록했는가,
몇 개의 탈삼진을 잡으며, 방어율을 내렸는가는
야구 경기의 목적인 승리에 우선될 수 없습니다.
많게는 수억의 연봉을 받기도 하는 여러 명의 스타들이 각자 자신의 기록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133경기에서의 다승, 포스트시즌에서의 우승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예이기는 하지만 9이닝 동안 단 한 개의 안타도 없이 승리한 팀이 있었습니다.
우리 프로야구의 경우도 9이닝 동안 단 한 개의 안타만 기록하고 승리한 기록이 3차례나 있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2986943
그만큼 복잡 미묘한 화합물이 팀 스포츠로서의 프로야구입니다.
그 팀 스포츠에서 수십 명의 선수들은 기계나 게임 속 유닛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이기심이 있고, 감정이 있고, 갈등이 있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분열이, 때로는 항명이 있을 수 있고, 그 종착점은 1994년 OB베어스의 항명 파동이 될 수도 1995년 OB베어스의 우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세상에서 실제 싸우는 것은 마린, 메딕 등이고, 바둑 세상에서 실제 싸우는 것은 검은 돌, 흰 돌입니다.
마린, 메딕에는 검은 돌, 흰 돌에는, 감정도 이기심도 갈등도 두려움도 분열도 항명도 조직도 계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e스포츠와 바둑의 전략, 전술에 감탄하고 열광합니다.
프로야구의 수십 명 선수들, 상대편 수백 명 선수들에는, 감정도 이기심도 갈등도 두려움도 분열도 항명도 조직도 계파도 존재합니다.
프로야구 경기의 엔트리 결정, 선발투수 결정, 라인업, 대타, 대주자, 대수비, 수비시프트, 볼 배합, 희생번트 등의 작전은 조직과 경영을 전제한 살아있는 전략, 전술입니다.
아니 법치를 근간으로 한 제갈공명이 ‘읍참마속’으로 촉나라를 지탱하였고, 그것이 삼국지의 명장면 중 하나(진수의 정사 삼국지 촉지 마속전)였던 것, 윤석민, 로페즈, 서재응 등의 돌출행동으로 지난 해 우승팀 기아 타이거즈가 올해 역대 최다 연패 3위 기록인 16연패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수십 명 선수들을 이끄는 감독, 코치의 통솔력, 고참과 스타 선수의 역할, 그에 의해 만들어지는 팀 분위기, 정신은 그 자체가 야구의 명장면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코칭스태프의 역할은 팀의 승리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는 한 야구의 재미나 선수들과 대척점에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협의의 작전이든 광의의 작전이든 야구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설사 음의 상관관계라고 하더라도 9회말 결정적인 찬스에서 강타자가 병살타를 쳐 경기가 끝나는 경우처럼, 소속팀에는 절망을 상대팀에게는 쾌감을 주는 상대적 의미의 야구의 극적 재미를 줄 수도 있습니다.
경기에 패한 팀 홈페이지의 글 중 많은 수는 감독의 선수교체, 희생번트, 전진수비 등 실패한 작전에 대한 다양한 분석입니다.
바둑의 복기와 같이 야구에도 복기가 가능하며, 이 중 핵심적인 부분은 감독의 작전이 됩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150km의 공을 던지거나 치거나 잡을 수도 없고 그것을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매순간 볼 배합 예상, 투수교체, 스퀴즈 작전, 수비위치 지시 등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의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Fragen eines lesenden Arbeiters)’은,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Wer baute das siebentorigen Theben? In den Büchern stehen die Namen von Königen.).”로 시작합니다.
반면 히어로즈 김동수 코치는 “야구는 자기희생을 공식기록으로 남겨 그가 팀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문서로 보여주는 스포츠”라고 정의했습니다.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팀배팅에 의한 진루타, 승계주자 실점률, 홀드 등 기록, 연봉산정 가점 항목이 더 다양해지고 강조되고 있듯이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본질과 방향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록의 면에서만 볼 때,) 축구, 농구 등이 테베 건설 기록이라면, 야구는 642명의 석수, 335명의 목수 등의 이름과 공사내역, 임금, 소요물품 등을 빠짐없이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1500m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개인 경기였고, 출전 선수의 목표는 금메달이었지만, 성시백을 추월하다 충돌사고를 일으킨 이호석은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라는 것은 야구가 팀 스포츠라는 것을 돕는 요소가 되어야지 야구를 개인 스포츠로, 팀 승리와 상관없이 개인기록만 내는 경기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매 순간의 선택, 선수 한 명 한 명의 활약을 가장 정확히 기록하는 ‘팀 스포츠’가 야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야구를 좋아합니다.
3. 1973년 880만 달러에 뉴욕 양키스를 매입해 16억 달러 가치의 제국을 키운 뉴욕 양키스 구단주 스타인브레너는, “승리는 내 인생에서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숨 쉬고 있다면 승리해야 한다(Winni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life, after breathing. Breathing first, winning next.).”라고 말했습니다.
야구의 본질은 팀 스포츠이며, 야구팀의 목표는 승리입니다.
1경기로 국한하면 그 1경기의 승리를 거두는 것,
정규시즌 133경기로 한정하면 133경기에서 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는 것,
한국시리즈로 한정하면 상대팀보다 먼저 4승을 거두는 것입니다.
2007년 4월 17일 SK와이번스는 1안타 2사사구만을 얻고도 8안타 4사사구를 얻은 기아 타이거즈에게 승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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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팀 타율 꼴찌의 기아 타이거즈는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1년 승률 0.508로 10승 투수 하나 없던 두산 베어스는, 승률 0.609로 10승 투수가 4명이나 있던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팀과 상대 팀 선수들의 개인 기록의 합의 우열관계는 우리 팀과 상대 팀 간의 승패와는 상대적 인과관계를 가질 뿐입니다.
1회 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천문학적 몸값의 메이저리그 스타들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콜드 게임 자막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것도 같은 예입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꼴찌, 3위(6팀 중, 장명부 30승 6세이브, 427 1/3이닝), 꼴찌, 꼴찌, 6위(7팀 중), 꼴찌, 꼴찌’로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가, 김성근 감독의 지휘 하에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어울리는 구단의 지원 하나 없는 오대산 지옥훈련으로 사상 처음이자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것도 같은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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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이 거의 없는 지휘로도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지 만은 않습니다.
대개의 승리는 일반적, 통상적인 야구로 이루어지는 것 또한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례가 거의 없는 창의력이 번뜩이는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러운 야구가 금기시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서회항로), 한니발의 알프스 산맥, 만슈타인의 아르덴 숲, 몽고메리의 노르망디, 맥아더의 인천, 라인하르트의 페잔 회랑 등 역사 속, 소설 속 명장면들은 고정관념으로는 불가능한 도전이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야구는 영화, 드라마, 게임 속 인물들의 희로애락과는 다른 사전각본도 사후편집도 없는 공 하나에 죽고 사는 치열함, 절실함,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구 규정에 부합하는 이상 치열함, 절실함, 진정성에서 비롯된 새로운 작전은, 그것이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작전인가로 평가되어야지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는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리어 그것이 팀 승리에 효과적이지 않은 작전이 아닌 이상 작전의 선택항을 늘렸다는 점, 야구의 다양성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뒤지고 있던 김동성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 스케이트날 내밀기 기술로 우승했습니다.
중국 리자준은 다 잡았던 금메달을 빼앗겼습니다.
중국 언론, 여론은 김동성 등 한국 선수들을 비난했고, 이의 연장에서 중국은 스케이트날 내밀기 기술을 하면 실격시키도록 ISU규정을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가령 김동성의 결승점 스케이트날 내밀기 기술을 비난하고 “‘전통’, ‘본질’, ‘상식’에 어긋나는 정정당당하지 않은 한국 쇼트트랙” 운운하는 기사가 있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몇몇 언론, 여론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김동성의 결승점 스케이트날 내밀기 기술은 치열함, 절실함, 진정성에서 비롯된 당시 규정을 준수한 정정당당하고 훌륭한 전술이었습니다.
나는 리자준과 오노가 결승점 스케이트날 내밀기 기술로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빼앗았더라도 (경기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면) 땅을 치며 안타까워할지언정 ‘사무라이’, ‘상식’, ‘안티’, ‘전통’, ‘본질’ 등의 추상적 단어들을 근거로 삼아 그들의 스케이팅을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야구 작전, 야구 경향은 영원불멸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과거 김성근 감독이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를 우리 프로야구에 처음 도입했을 때, 야구계는 김성근 감독의 데이터 야구를 “치사한 일본식 야구”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투수교체를 하든, 치고 달리기를 하든, 번트를 하든, 고의4구를 하든, 무엇을 하든 “일본야구”라고 앵무새처럼 해설했습니다.
그러나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는 메이저리그를 포함해 전세계 야구의 가장 기본적인 전략입니다.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 같은 치사한 일본식 야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감독이 있다면 양반 대접을 받기 보다는 바보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09년 조범현 감독의 기아 타이거즈는 6인 선발 로테이션을 운영했습니다.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는 5인 선발 로테이션이 일반적이고, 6인 선발 로테이션은 일본 프로야구 특유의 제도입니다.
기아 타이거즈는 칸베 토시오 코치, 스기모토 타다시 코치 등 일본인 투수코치도 기용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신기한 일인지 기아 타이거즈를 향해 “치사한 일본식 야구” 운운하는 사람들은, 기사들은 없었고 기아 타이거즈는 12년 만의 우승이자 통산 10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10년 뒤 100년 뒤의 야구가 몇 선발 로테이션일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야구의 기본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한 다양한 작전은 야구를 더 복잡하고 풍성하고 재미있게 합니다.
(투수의 견제를 유발하는 리드를 한) 다른 주자에 대한 견제 순간 3루 주자가 홈스틸 하는 것, 3루 주자가 2루수 플라이 때 홈을 밟는 것, 2루 주자가 1루 땅볼 때 홈을 밟는 것, 도루 중이었던 1루 주자가 안타 때 홈을 밟는 것, 주자 도루시 주자의 스타트가 빠르고 변화구면 타자는 기다리고 주자의 스타트가 늦고 속구라면 히트앤드런으로 최소한 커트를 하는 것 등은 인플레이 상황에서 공격과 수비의 선택항을 다양하고 복잡하게 합니다.
경기 후반 극단적인 상황에서 외야수 1명을 외야에서 빼서 내야에 배치해 내야 수비를 강화하는 것, 좌타자를 상대로 좌투수를 투입하면서 던지고 있던 사이드암 투수를 외야수로 바꾸었다가 우타자 때 다시 투수로 교체하는 것, 대주자 요원이 없을 때 발 느린 주자 대신 발 빠른 투수를 대주자로 기용하는 것, 주자 1, 3루에서 스퀴즈 번트 모션을 취해 3루 주자를 견제하게 하여 단독도루가 힘든 1루 주자를 2루 도루 시키는 것, 경기 막판 승부처에서 수비 요원이 마땅치 않더라도 1할도 못 치는 내야수 대신 대타를 기용하는 것, 2익수처럼 극단적인 시프트로 안타를 막고 2루 방향의 기습번트 안타로 그 시프트를 파해하는 것 등은, 객관식에 가까운 장기를 넘어 주관식에 가까운 바둑에 가깝게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합니다.
물론 지명타자 제도도 없이 9명이 경기를 하고 옛날 축구처럼 단 2명만 교체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야구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른손을 써야 한다는 조선시대 양반 논리로 좌투수, 좌타자 같은 짝배기 동작은 관습헌법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규정이 없는 이상 현재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전례 없이 복잡하고 다양하며 당황스러운 야구도 야구 자체에 불과합니다.
축구에서 이기고 있는 팀이 불필요한 선수교체를 하고 볼을 돌리는 등 시간을 끌어 이기는 작전을 쓰는 것은, 축구규칙이 이를 허용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작전, 그러한 축구 역시 축구 자체에 불과한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골리앗 군단을 다윗들이 쓰러뜨릴 수 있는, 결말이 정해져있기보다는 움직일 수 있는, 인생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드라마, 게임 속 인물들의 인생과는 다른, 사전각본도 사후편집도 없는, 공 하나에 죽고 사는 치열함, 절실함, 진정성이 있는 인생들이 야구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4. 서형욱 MBC 축구해설위원은 ‘야구 읽어 주는 남자(MBC)’ 방송에서 “축구는 세계의 스포츠, 야구는 미국의 스포츠” 등의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상과 별개로) 야구가 인기가 많은 대한민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 대만 등이 언제부터 미국의 한 주가 되었는지, 쿠바, 베네수엘라 등이 미국이라면 어떻게 반미 노선을 취할 수 있는지 무척 의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하늘처럼 숭상하는 몇몇 야구인, 기자, 해설위원, 야구팬들의 발언, 행동들을 보면, 또 다른 측면에서 깊은 의문이 생깁니다.
야구에서와 달리 축구에서는 “영국 축구, 프리미어 리그와 다르기 때문에 이단, 이적 단체”식의 발언을 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06년 제1회 WBC 결승전은 일본과 쿠바의 경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은 대한민국과 쿠바의 경기, 2009년 제2회 WBC 결승전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였듯이 야구는 야구일 뿐입니다.
미국 야구는 미국 야구일 뿐이고, 한국 야구는 한국 야구일 뿐입니다.
“메이저리그는 헌법이므로 이에 반하는 한국 야구는 위헌”이라는 식의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증을 받고 국제 변호사 운운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대한민국은커녕 뉴욕주에서도 변호사 자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LA다저스 야구에 정통하다고 해서 한국 프로야구, 세계 야구에 정통하다는 등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1967년 착공되어 1973년 준공된 소양강댐은 높이 123미터, 세계 4위 동양 최대의 댐 공사였습니다.
소양강댐은 대일 청구권 자금이 투입된 공사였기 때문에 일본공영이 설계, 기술, 용역을 맡았습니다.
일본공영은 소양강댐을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설계했는데, 제철소가 없었고 시멘트도 부족했던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철근, 시멘트, 기자재까지 모두 일본에서 수입해서 산간까지 운반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소학교(초등학교)만 졸업한 현대 정주영 회장은 소양강댐 부지 주변에 널려 있는 자갈, 모래, 흙을 떠올려 사력댐 설계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준공 당시 아시아 최대의 댐이었던) 압록강의 수풍댐을 건설했던 구보다 회장을 필두로 동경대 출신의 댐 권위자들이 수두룩한 세계 굴지의 댐 건설 회사 일본공영의 설계안을 뒤집은 것입니다.
동경대학 출신의 하시모토 일본공영 부사장은 소학교 학력의 정주영을 겨냥해 “당신 어디서 댐 공부를 했나? 무식한 소리 하지도 마라.”, “그게 어디서 배운 소리냐? 어떤 사람이 네 선생이냐?”라며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건설부, 수자원개발공사 사람들도 질세라 같이 욕을 퍼부었습니다.
건설부는 사력댐 완전 봉쇄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력댐으로 만들면 댐을 건설하다가 큰 홍수라도 나 터지면 서울이 잠기고 정부가 흔들린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포병 장교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은 “그럼 콘크리트댐을 완성한 다음에 몇 십억 톤의 물이 가둬져 있을 때 북한에서 폭격으로 댐을 깨뜨린다면 어떻게 되는 거요?”, “흙, 모래, 돌로 댐을 쌓아놓으면 포에 맞아도 펄썩했다가 도로 주저앉으면서 흙만 좀 튀어 오르지 산을 폭격하는 거나 같거든. 그럼 댐이 무너지지는 않을 거요.”라며 사력댐 대안의 철저한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시아 최대의 댐 압록강 수풍댐을 지은 팔순이 넘은 구보다 일본공영 회장은, 당시에는 젊었던 정주영 사장에게 이마가 땅에 붙게 절을 하며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지난번엔 우리 하시모토 군이 큰 결례를 했습니다. 하시모토 군은 콘크리트댐의 권위잡니다. 그래서 아스댐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고 사장님께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현장의 모든 조건을 다 조사했는데 암반이 취약해 콘크리트 댐보다 오히려 사력댐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당신의 식견에 존경을 표합니다.”
콘크리트댐으로 설계되었던 소양강댐은 엄청난 예산 절감 효과를 보며 사력댐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콘크리트댐에 정통하다고 해서 사력댐에도 정통하다는 등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공법, 어떠한 건설로 댐을 지을 것인지와, 어떠한 작전, 어떠한 야구로 이길 것인지는 다른 평면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구는 미국에서 기원했고, 종목 특성상 신장이 큰 서양 선수들에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 오마쓰 감독은 높은 신장의 소련 선수들이 앞서 뜬 일본 선수를 블로킹 하려고 뜨다 착지하는 순간에 뒤에서 공격을 하는 시간차 공격을 개발해 구기종목 사상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이 A속공, B속공, C속공으로 속공 공격을 체계화시키고 개인 시간차 공격을 개발하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핌픽에서는 폴란드 남자배구 대표팀이 9인제 경기에서 등장하던 후위공격을 도입해 전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힘과 높이의 정통적인 오픈 공격과 블로킹의 배구를 숭상하는 배구인, 기자들은 일본과 폴란드 등에서 창조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배구 전술, 전략을 ‘상식’, ‘안티’, ‘전통’, ‘본질’ 등의 추상적 단어들을 근거로 삼아 탄압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차 공격, A·B·C속공, 개인 시간차 공격, 후위공격 등은 현대 모든 배구에서 이용될 만큼 보편화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시간차 백어택 등의 새로운 공격 옵션들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배구가 리베로를 도입했다면, 야구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일본 배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땄다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도 금메달을 땄습니다.
일본과 폴란드 등에서 새로운 배구 전술, 전략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듯이, 대한민국과 일본 등에서 새로운 야구 전술, 전략을 창조하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1992년 LA 폭동으로 많은 재미교포들이 회복할 수 없는 희생을 당했습니다.
많은 흑인들이 한인들을 상대로 살인, 방화, 강간, 약탈, 폭행을 했습니다(사망자 55명, 부상자 2,383명, 체포된 사람 13,379명, 1992년 기준 피해 총액 7억 1700만 달러).
그러나 흑인 폭동의 총구를 한인들에게 향하게 한 것은 편파적 보도를 일삼은 LA타임스 등의 미국 주류 언론, 기자들이었습니다.
한인 식품상인이 장대한 체구의 흑인 소녀 도둑에게 3차례나 얻어맞고 총을 쏜 소위 두순자 사건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면 인종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언론의 기본원칙은 사라졌습니다.
두순자 사건과 관련 LA경찰국 기자회견에서도, 재판 기록에서도 인종갈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언론은 상인의 도둑에 대한 과잉대응을 한·흑 갈등으로 보도했습니다.
1992년 4월 29일, 로드니 킹 사건(백인경찰관 4명이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한 사건으로 폭행 동영상이 뉴스로 방영)을 일으킨 4명의 백인경찰관에 대해 배심원단은 무죄평결을 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이를 두순자 사건과 함께 교묘히 보도했고, 이날부터 벌어진 흑인 폭동의 주된 대상은 한인 타운이 되었습니다.
1993년 LA 지역에서 한인 관련 총격사건이 43번 발생해 19명의 한인이 살해되었습니다.
가해자는 모두 흑인, 히스패닉이었지만 미국 주류 언론, 기자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가게를 하던 한인이 흑인 소년에게 피살된 사건이 거의 유일하게 보도되었지만, 이 때에도 인종 배경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반면 한인이 가해자인 사건에서는 굳이 인종 배경을 강조해 보도했습니다.
십 수 년이 지났지만,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조승희 사건) 이후에도 재미교포들이 한동안 불안해했던 이유입니다.
1947년부터의 제주, 1980년부터의 광주 등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의 이러한 측면을 몸소 알고 있을 야구 기자들 중 몇몇은 LA폭동이후의 미국, 1947년부터의 제주, 1980년부터의 광주 등에 대해 언론, 기자의 영향력이라는 점과 관련해 매우 기이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 싫어하는 야구, 야구인을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반복해서 모욕하고서 ‘안티’, ‘피해의식’, ‘전통’, ‘본질’, ‘상식’ 운운하는 일이 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6162088
SK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언론, 여론에 대한 20가지 화두
http://blog.paran.com/law/33099819
http://blog.paran.com/law/32771194
2009년 한국시리즈 SK, 기아의 사인훔치기, 수신호, 오심, 욕설 논란
http://blog.paran.com/law/34598443
http://blog.paran.com/law/34373871
머나 먼 안드로메다에는 눈이 14개 달린 괴 생명체가 있을지, 그래서 출처나 근거도 전혀 없이 지구인이 14명의 안드로메다 소녀 도둑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하며 지구인을 비난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에서라면 모를까 적어도 지구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 동물, 식물들이 전부 욕을 할 것 같습니다.
그 욕을 안드로메다어로 옮기기에는 낯이 뜨거워집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지만, 야구를 좋아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야구가 너무나 인생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괴로움, 무기력함, 짜증을 지우고 즐거움, 만족을 즐겨야 할 여가의 자리에, 어느 집단, 어느 조직, 어느 정치판보다도 심각한 야구판의 정치, 언론조작, 여론조작, 폭력도 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닮은 야구지만, 야구를 좋아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을 정도만큼은 야구가 인생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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