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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법이라는 필명으로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이 제가 야구와 관련해서 쓰는 글의 전부입니다.)
LG트윈스 2010년 비밀번호는 7783
1. 평행이론의 비밀번호 7783
①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는 프로원년인 1982년부터 1988년까지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는
1982년 꼴찌, 1983년 3위 (6팀 중) (장명부 30승 6세이브, 427 1/3이닝 기록), 1984년 꼴찌, 1985년 꼴찌, 1986년 6위 (7팀 중), 1987년 꼴찌, 1988년 꼴찌 (7팀 중 7위)를 기록한 충격적인 꼴찌팀이었습니다.
그러나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7년째에는 7위를 기록한 태평양 돌핀스는,
8년째 김성근 감독으로 감독을 교체했습니다.
8년째인 1989년 태평양 돌핀스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이후 처음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2294107)
http://blog.paran.com/law/36162088)
② 롯데 자이언츠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01년 8위, 2002년 8위, 2003년 8위, 2004년 8위, 2005년 5위, 2006년 7위, 2007년 7위로 8888577 비밀번호를 완성하며 ‘꼴데’라고까지 불렸습니다.
그러나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7년째에는 7위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는,
8년째 로이스터 감독으로 감독을 교체했습니다.
8년째인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2000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8년 만에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5354860)
③ LG트윈스도 2003년부터 2009년까지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LG트윈스는 7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28년의 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 팀이 된 것입니다.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는 프로야구 역대 최장 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입니다.
28년 프로야구 역사상 8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은 단 한 팀도 없었습니다.)
전술한 대로 LG트윈스에 앞서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기록했던 태평양 돌핀스, 롯데 자이언츠는 7년째 7위, 8년째(새 감독) 3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7년째(2009년)에는 7위를 기록한 LG트윈스는,
8년째 박종훈 감독으로 감독을 교체했습니다.
2010년 박종훈 감독의 LG트윈스가 3위를 기록한다면,
비밀번호 7783의 프로야구판 평행이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2. 월드컵팀 LG트윈스
① LG트윈스는 1990년 3월 15일 (MBC 청룡을 인수해) 창단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2294107)
이탈리아 월드컵이 열린 1990년 LG트윈스는 승률 0.592로 사상 첫 정규시즌 우승,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미국 월드컵이 열린 1994년 LG트윈스는 승률 0.643로 두 번째 정규시즌 우승,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이 열린 1998년 LG트윈스는 승률 0.504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일본 월드컵이 열린 2002년 LG트윈스는 승률 0.520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② MBC청룡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도, LG트윈스(MBC청룡)는 월드컵이 열린 해에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스페인 월드컵이 열린 1982년 MBC청룡의 승률 0.575는, MBC청룡이 1985년(1986년 멕시코 월드컵 전)까지 기록한 최고승률이었습니다.
멕시코 월드컵이 열린 1986년 MBC청룡의 승률 0.590은, MBC청룡이 1989년(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까지 기록한 최고승률이었습니다.
③ 다만 LG트윈스는 독일 월드컵이 열린 2006년에는 월드컵해 징크스를 넘어 사상 첫 꼴찌, 승률 0.385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2005년 LG그룹에서 GS그룹(허씨)이 분리되면서 구씨 일가, 허씨 일가의 LG 쌍둥이 체제가 붕괴된 데 따른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술할 김성근의 저주(어윤태의 저주)도 2006년의 극적이고 참담한 예외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2010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열립니다.
전통에 따른다면, 월드컵 팀 LG트윈스의 4강 진출 내지 결승 진출은 당연합니다.
3. 김성근의 저주와, 박종훈, 김기태 감독
① 김성근 감독은 2001년 9승 25패 승률 0.265(팀타율이 아님)의 압도적인 꼴찌팀 LG트윈스를 감독대행으로 맡아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두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정식감독이 된 첫 해인 2002년에는 ‘야구의 신’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지도력으로 약한 전력의 LG트윈스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을 기다린 것은 “당신야구는 김성근야구지, LG야구가 아냐.”라는 어윤태 LG트윈스 사장(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청장)의 중도경질 통보였습니다.
고관절무혈괴사증으로 선수생명이 위태롭던 대타 김재현이 2타점 2루타성 타구를 치고 절뚝거리며 1루에 갔던 2002년 LG트윈스의 마지막 경기 후, 보름도 지나지 않은 2002년 11월 23일의 일이었습니다.
이상훈 등 선수들이 반발하고, 강추위 속에서 많은 팬들이 버스까지 동원해 그룹 본사와 농구팀 경기장에서 “‘정도 경영’ 추구해온 LG 그룹, 야구단은 ‘독재 경영’, 어윤태 사장, 유성민 단장 당신들은 팬들의 참뜻을 아느냐!”, “우승을 못하면 짤리니 꼭 우승하라”는 플래카드를 거는 등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윤태 LG트윈스 사장은, 팬들의 거센 반발에도 2002년 7위에 그쳐 한화 이글스와 재계약을 하지 못한 고려대 2년 후배 이광환 감독을 LG트윈스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2003년 이광환 감독의 LG트윈스는 6위에 그쳤습니다.
2002년 이후 LG트윈스는 666-8587 전화번호 순위를 기록하며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를 김성근의 저주(어윤태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http://blog.paran.com/law/36162088)
② 김성근 감독은 1979년∼1981년 신일고등학교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 때 김성근 감독은 체격이 좋은 신일고 교직원 한 명을 만났습니다.
LG트윈스 박종훈 감독의 부친이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김성근 감독은 OB베어스 코치로 프로야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3년 신일고, 고려대를 졸업한 외야수 박종훈이 OB베어스에 입단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1982년부터 1983년까지는 OB베어스 코치를, 1984년부터 1988년까지는 OB베어스 감독을 맡았습니다.
박종훈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OB베어스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했습니다.
OB베어스 박종훈은 7년의 선수생활 중 6년(감독 5년, 코치 1년)간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2006년 10월 김성근 감독은 SK와이번스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SK와이번스의 2007년 2차지명 5순위(38번) 선수는 박윤(박종훈 감독의 아들)이었습니다.
상무에서 제대한 박윤은 2010년 SK와이번스 1군 진입을 목표로 훈련중입니다.
LG트윈스 박종훈 감독은 김성근 감독과 3대에 걸친 인연이 있습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 부자 2대를 가르친 경우는 김성근 감독(OB베어스 박종훈, SK와이번스 박윤)이 처음입니다.
③ 1996년 김성근 감독은 ‘(8위), 7위, 8위, 7위, 8위, 8위’의 꼴찌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을 맡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은 혹독한 훈련으로 쌍방울 레이더스를 진정한 돌격대로 만들었습니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1위 해태 타이거즈에 불과 3승(3경기)이 뒤지는 2위를,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1위 해태 타이거즈에 불과 3.5경기 뒤지는 3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정난을 겪던 모기업의 1997년 부도는 벼랑 끝에서 돌격대 정신을 발휘하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아예 벼랑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선수들이 여관, 분식점, 공원을 전전했고, 숙박비 절약을 위해 대전, 광주 경기는 당일치기로 하기도 하고,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르기도 하고,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조규제, 박경완, 김기태, 김현욱 등 투타 핵심 선수들, 마일영, 라형진 등 선수지명권까지 사실상 현금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습니다.
선수들 숙식비용을 위해 김성근 감독이 사비를 털 정도였습니다.
어려운 팀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잠도 못자고 새벽까지 전력분석을 하던 김성근 감독이 신장암에 걸려 오른쪽 콩팥 제거 수술을 받은 것도 이때의 일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담석이라고 둘러대고 바로 야구장으로 돌아왔고, 하루에 1000개씩 펑고를 쳤습니다.
감독, 선수의 연봉, 운영비도 없는, 신인선수 몫의 계약금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어렵고 추운 쌍방울 레이더스였지만, 김성근 감독이 나서서 신인선수 이진영의 계약금 1억원을 갹출할 만큼 어느 팀보다도 정이 많고 따뜻했습니다.
8개 구단 중 가장 돈이 많았던 현대 유니콘스로 팔려가게 된 박경완은 눈물을 흘리며 “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했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심장이던 김기태(현 LG트윈스 2군 감독)도 이 때 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습니다.
2002년 11월 23일 김성근 감독은 약한 전력의 LG트윈스를 준우승으로 이끌고도 “당신야구는 김성근야구지, LG야구가 아냐.”라는 어윤태 LG트윈스 사장의 중도경질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 20일 뒤였던 2002년 12월 12일 김성근 감독의 회갑연이 열렸습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중도경질을 당한 김성근 감독의 회갑연은, 썰렁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가득 찼습니다.
OB베어스,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트윈스의 거의 모든 전현직 선수들, 코치들 등 100명이 넘는 많은 야구인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김성근 감독을 중도경질 했던 LG트윈스 프런트의 직원들(김연중 운영부장 등)도 있었습니다.
회갑연을 주도하고 제자 대표로 축사를 읽은 것은 당시 SK와이번스 선수였던 김기태(현 LG트윈스 2군 감독)였습니다.
④ 2010년 LG트윈스는 박종훈 1군 감독과 김기태 2군 감독을 새로 맞았습니다.
박종훈, 김기태 감독은 2003년부터 7년간 LG트윈스를 지배해 온 김성근의 저주를 깰 최적의 조합일 가능성이 큽니다.
4. LG트윈스에는 박씨 감독이 없었다.
LG트윈스에서 정식 감독을 맡은 감독은 총 7명으로 총 8번의 감독 임명이 있었습니다.
1990년 창단한 LG트윈스의 초대 감독은 백인천 감독이었습니다.
백인천 감독은 LG트윈스의 첫 백씨 감독이었습니다.
백인천 감독은 1990년 LG트윈스의 첫 정규시즌 우승,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등 LG트윈스 감독으로 5할 이상의 승률(승률 0.506)을 기록했습니다.
1992년에는 이광환 감독이 LG트윈스 2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광환 감독은 LG트윈스의 첫 이씨 감독이었습니다.
이광환 감독 역시 1994년 LG트윈스의 두 번째 정규시즌 우승,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등 LG트윈스 감독으로 5할 이상의 승률(승률 0.541)을 기록했습니다.
1996년 시즌 중 천보성 감독이 LG트윈스 3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천보성 감독은 LG트윈스의 첫 천씨 감독이었습니다.
천보성 감독 역시 1997년, 1998년 LG트윈스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끄는 등 LG트윈스 감독으로 5할 이상의 승률(승률 0.500)을 기록했습니다.
2000년 이광은 감독이 LG트윈스 4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광은 감독은 LG트윈스의 첫 이씨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이광은 감독(2번째 이씨 감독)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고 LG트윈스 감독으로 4할 대 승률(승률 0.463)에 그쳤습니다.
2001년 시즌 중 김성근 감독이 LG트윈스 5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LG트윈스의 첫 김씨 감독이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첫 김씨 감독) 역시 2002년 LG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끄는 등 LG트윈스 감독으로 5할 이상의 승률(승률 0.528)을 기록했습니다.
2003년 이광환 감독이 LG트윈스 6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광환 감독은 1992년에는 LG트윈스의 첫 이씨 감독이었지만, 안타깝게도 2003년에는 LG트윈스의 첫 이씨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이광환 감독(3번째 이씨 감독)은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LG트윈스 감독으로 4할대 승률(승률 0.458)에 그쳤습니다.
2004년 이순철 감독이 LG트윈스 7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순철 감독도 LG트윈스의 첫 이씨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이순철 감독(4번째 이씨 감독)도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LG트윈스 감독으로 4할대 승률(승률 0.431)에 그쳤습니다.
2007년 김재박 감독이 LG트윈스 8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김재박 감독도 LG트윈스의 첫 김씨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김재박 감독(2번째 김씨 감독)도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LG트윈스 감독으로 4할대 승률(승률 0.421)에 그쳤습니다.
LG트윈스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첫 성씨 감독 =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상 + 5할대 감독 승률’,
‘첫 성씨가 아닌 감독 =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 + 4할대 감독 승률’
전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LG트윈스의 상징은 쌍둥이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쌍둥이를 이끄는 LG트윈스 감독의 성씨는 쌍둥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03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씨는 백씨, 이씨, 천씨, 김씨, 박씨 외에도 즙씨, 뇌씨, 궉씨, 누씨, 춘씨, 묘씨, 군씨, 비씨, 증씨, 개씨, 자씨, 좌씨, 저씨, 내씨, 엽씨, 빙씨, 초씨, 삼씨, 수씨, 준씨, 동방씨, 사공씨, 남궁씨, 선우씨, 제갈씨, 황보씨, 소봉씨, 서문씨, 어금씨, 망절씨, 장곡씨 등 286개에 달합니다.
귀화로 생긴 성씨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 국적의 성씨는 700개를 훨씬 넘습니다.
로이스터 감독처럼 외국 국적의 감독까지 고려하면, LG트윈스 첫 성씨 감독 후보는 무한합니다.
2010년 박종훈 감독이 LG트윈스 9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박종훈 감독은 LG트윈스의 첫 박씨 감독입니다.
5. 김성근, 이광환, 박종훈
LG트윈스 역대 감독 7명 중 가장 높은 승률(승률 0.528)을 기록한 감독은 김성근 감독입니다.
LG트윈스 역대 감독 7명 중 2번째로 높은 승률(승률 0.526)을 기록한 감독은 이광환 감독입니다.
김성근 감독과 이광환 감독의 공통점은 OB베어스(두산 베어스) 감독을 맡은 후 LG트윈스 감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LG트윈스 역대 감독 7명 중 두산 베어스(OB베어스) 감독 경험이 있었던 감독은 김성근, 이광환 감독 둘 뿐이었습니다.
LG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잠실구장을 함께 쓰는 잠실 라이벌이자 서울 라이벌입니다.
그런 두산 베어스(OB베어스) 감독 출신을 LG트윈스 감독으로 임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임이 분명합니다.
두산 베어스(OB베어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는 것을 감수하고 영입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평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잠실구장을 함께 쓰는 잠실 라이벌이자 서울 라이벌 팀에서 LG트윈스(MBC청룡)를 바라본 경험이 LG트윈스 감독을 할 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박종훈 감독은 2006년 말부터 약 3년간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을 맡았습니다.
2009년 9월 박종훈 감독은 LG트윈스 감독을 맡았습니다.
6. 이택근과 40억의 도전
히어로즈 이택근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2009년까지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중인 타자는 이택근 단 한 명이었습니다.
이택근 외에는 김동주, 정근우가 2007년부터 3년 연속 3할 타율을, 홍성흔, 김현수, 김주찬, 김원섭이 2008년부터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2010년에도 3할 타율을 기록할 경우 이택근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 연속 3할 타율로 우타자 최고기록을 세운 김동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좌타자 양준혁, 장성호는 9년 연속 3할 타율 기록했습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병역까지 면제된 1980년생 골든글러브 중견수 이택근은 히어로즈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LG트윈스는 그런 이택근을 트레이드로 영입했습니다.
‘히어로즈 이택근’ 대 ‘LG트윈스 박영복, 강병우 + 25억(서울 입성금 15억 상계를 합쳐 40억이라는 기사도 있음)’의 트레이드를 한 것입니다.
http://news.donga.com/3//20091231/25130725/1
박영복은 2002년 2차지명 2순위로 지명되어 통산 타석이 17타석에 불과한 포수입니다.
강병우는 2005년 2차지명 6순위로 지명되어 1군 출장 기록이 전무한 외야수입니다.
결국 이택근 트레이드는 히어로즈가 이택근을 25억(40억) 이상에 매각한, LG트윈스가 이택근을 25억(40억) 이상에 매입한, 완벽한 현금 트레이드였습니다.
1982년부터 2010년까지 29년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20억을 넘는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9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프로야구 구단 중 가장 작고 가난했으며 모기업 부도까지 맞은 쌍방울 레이더스가 쌍방울의 심장인 김기태와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중간계투 20승 투수 김현욱을 묶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부자인 삼성 라이온즈에 사실상 현금 트레이드했을 때도 20억에 그쳤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해태 타이거즈가 기록한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넘는 프로야구 역대 최장기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입니다.
http://blog.paran.com/law/35384705)
삼성 라이온즈의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은 2009년 막을 내렸습니다.
이택근을 현금 트레이드 해오고 FA 이진영, FA 정성훈, FA 이병규를 영입하고 박용택이 0.372 타격왕으로 각성한 LG트윈스 타선은, 최동수, 이대형, 안치용, 박경수, 권용관, 조인성, (작은) 이병규, 박병호 등을 포함해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7. 엘롯기 시간차 공격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프로야구 꼴찌는 롯데, 롯데, 롯데, 롯데, 기아, LG, 기아, LG 순으로(롯롯롯롯기엘기엘) 엘지, 롯데, 기아 단 3팀이 돌아가면서 맡았습니다.
프로야구 구단들 중 가장 팬들이 많은 LG, 롯데, 기아 3팀의 암흑기였습니다.
소위 엘롯기 동맹, 엘롯기 연맹의 엘롯기 시대였습니다.
2004년 롯데 자이언츠가 4년 연속 꼴찌를 했고,
2005년 기아 타이거즈가 24년 만에 처음 꼴찌를 했고,
2006년 LG트윈스도 25년 만에 처음 꼴찌를 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가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엘롯기 섬을 탈출했고,
2009년 가을에는 기아 타이거즈가 엘롯기 섬을 탈출했습니다.
갑작스런 태풍이 없는 한 2010년 가을에는 LG트윈스가 엘롯기 섬을 탈출할 가능성이 큽니다.
8. 2010년 10년 적금 만기
1989년 MBC청룡은 승률 0.425로 꼴찌 롯데 자이언츠에 불과 반 게임 앞선 꼴찌에서 2등을 차지했습니다.
1990년 MBC청룡을 인수한 LG트윈스는 팀 창단과 함께 첫 정규시즌 우승과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1999년 LG트윈스는 승률 0.466로 매직리그 꼴찌에서 2등을 차지했습니다.
2000년 LG트윈스는 매직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9년 LG트윈스는 승률 0.406로 꼴찌에서 2등을 차지했습니다.
2010년 LG트윈스가 10년 만기의 적금을 탄다면, 어느 때보다도 큰 감동이 있는 우승을 차지할 것입니다.
9. 호랑이 기운
① 2009년 LG트윈스에게 호랑이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습니다.
2009년 4월 19일 LG트윈스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4.19 트레이드)를 했습니다.
즉 LG트윈스의 내야수 김상현, 박기남은 기아 타이거즈로, 기아 타이거즈의 우완투수 강철민은 LG트윈스로 팀을 옮겼습니다.
2009년 LG트윈스에서 김상현은, 2경기 8타석 타율 0.143, 0홈런, 1타점, 출루율 0.250, 장타율 0.143, OPS 0.393, 1도루, 1안타, 1득점의 비주전선수였지만,
기아 타이거즈에서 김상현은, 119경기 타율 0.317, 36홈런(1위), 126타점(1위), 출루율 0.381, 장타율 0.639(1위), OPS 1.021, 6도루, 140안타, 76득점을 기록해 MVP가 되었습니다.
2009년 LG트윈스에서 박기남은, 1군에서 단 1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했지만,
기아 타이거즈에서 박기남은, 104경기에서 3루수(78경기), 2루수(24경기), 유격수(5경기)로 출장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강철민은 부상으로 기아 타이거즈에서도 LG트윈스에서도 1군에서는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2009년 4월 19일, 역사적인 김상현, 박기남 대 강철민의 2대 1 트레이드가 있었던 날, LG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즈는 6승 1무 7패(승률 0.429)로 공동 5위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김상현이 MVP 활약을 하고 박기남이 백업 내야수 역할을 충실히 한 기아 타이거즈는, 트레이드 이후 무려 75승 3무 41패(승률 0.630)의 기록적인 상승세로, 1997년 이후 12년 만의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었습니다.
기아 타이거즈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던 조범현 감독은 조갈량이라는 찬사와 함께 3년 16억 재계약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김상현, 박기남이 빠지고, 강철민이 단 1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LG트윈스는, 트레이드 이후 48승 3무 68패(승률 0.403)의 부진으로, 7위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역대 프로야구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타이기록을 세웠습니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11년 동안 0.559의 승률로 8번의 포스트시즌 진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등 불과 52세에 무려 778승을 거두었던 김재박 감독은 역대 LG트윈스 감독 7명(김성근 감독 승률 0.528, 이광환 감독 승률 0.526, 백인천 감독 승률 0.506, 천보성 감독 승률 0.500, 이광은 감독 승률 0.463, 이순철 감독 승률 0.431, 김재박 감독 승률 0.421) 중 최하위 승률을 기록하고 감독 인생 처음으로 야인이 되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3615666)
2009년 승률 0.406의 7위 팀 LG트윈스는, 승률 0.609의 기아 타이거즈를 상대로 2승 1무 16패(기아 타이거즈 기준 승률 0.842)를 기록했습니다.
28년의 역대 프로야구에서 승률 4할(0.400) 이상의 팀이, 1시즌 1팀에게 16패 이상을 기록한 것은, 통산 5번째(1985년 롯데 자이언츠, 1989년 MBC청룡, 2000년 해태 타이거즈, 2004년 롯데 자이언츠, 2009년 LG트윈스) 기록입니다.
28년의 역대 프로야구에서 꼴찌 팀 아니었던 팀이, 1시즌 1팀에게 16패 이상을 기록한 것 역시, 통산 5번째(1985년 롯데 자이언츠, 1986년 청보 핀토스, 1989년 MBC청룡, 2000년 해태 타이거즈, 2009년 LG트윈스) 기록입니다.
(역대 프로야구 천적관계 보약팀 (피식자 팀), 포식자 팀
http://blog.paran.com/law/34120030)
2009년 LG트윈스가 2위 SK와이번스(승률 0.602)에게 11패(SK와이번스 기준 승률 0.579), 3위 두산 베어스(승률 0.534)에게 6패(두산 베어스 기준 승률 0.316)만을 했던 것까지 고려하면,
그만큼 2009년 LG트윈스는 이례적으로 기록적으로 기아 타이거즈만 만나면 패했습니다.
LG트윈스의 FA 이진영(전 SK와이번스) 영입, 김상현, 박기남 대 강철민의 2대 1 트레이드(4.19 트레이드), 김상현 나비효과에 의한 이대수(전 두산 베어스) 트레이드 불발과 2군행 등도 2009년 LG트윈스가 기아 타이거즈에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009년 LG트윈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기아 타이거즈 우승을 도왔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4193667)
http://blog.paran.com/law/36120752)
② 그러나 2009년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은 2010년 LG트윈스에게는 좋은 징조일 수 있습니다.
기아 타이거즈의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LG트윈스는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와 최대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동시에 LG트윈스는 기아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와 물고 물리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1994년 LG트윈스 우승의 중심에는 1994년 시즌을 앞두고 해태 타이거즈에서 트레이드 되어 온 해결사 한대화가 있었고,
2009년 기아 타이거즈 우승의 중심에는 2009년 시즌 중 LG트윈스에서 트레이드 되어 온 신해결사 김상현이 있었습니다.
양준혁, 마해영, 김상훈, 이용규, 손혁, 최향남, 이병훈 등의 트레이드까지 양팀의 관계는 더없이 복잡하고 깊습니다.
그 때문인지 LG트윈스의 2차례 정규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은 모두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 다음 시즌이었습니다.
1989년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고, 이듬해인 1990년 LG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1993년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고, 이듬해인 1994년 LG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2009년 기아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호랑이해인 1986년 MBC청룡이 승률 0.590로 MBC청룡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 승률을 기록한 것,
역시 호랑이해인 1998년 LG트윈스가 승이 패보다 불과 하나 많은 63승 1무 62패 승률 0.504(28년 프로야구 역대 한국시리즈 진출팀 54팀 중 최저 승률)로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차지한 것까지 고려하면,
2010년 백호랑이의 해 LG트윈스는 호랑이 기운을 받아 선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10. 2010년 2010만 관중
LG트윈스(MBC청룡)는 1982년부터 2009년까지 28년간 무려 19,446,443명의 관중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통산 관중 2위 롯데 자이언츠(17,810,178명)보다 1,636,265명이나 많은 프로야구 통산 팀 관중 1위 기록입니다.
2010년 LG트윈스는 553,557명 이상의 관중을 기록하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통산 2000만 관중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2010년 LG트윈스가 653,557명 이상의 관중을 기록하면 LG트윈스는 2010년에 2010만 관중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LG트윈스는 2005년 이후로는 줄곧 70만 명 이상의 관중을 기록해왔습니다.
LG트윈스의 2010년 2010만 관중 기록은 LG트윈스 선전의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습니다.
11. 2년과 3년의 차이
2009년 프로야구는 28년 역사상 가장 화려한 관중동원을 했습니다.
경기당 11,138명, 무려 5,925,285명의 관중을 기록한 것입니다.
2009년 롯데 자이언츠는 1,380,018명의 관중으로 프로야구 한 구단 시즌 최다 관중 동원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SK와이번스(841,270명)는 2007년부터 3년 연속, 두산 베어스(1,053,966명)는 2008년부터 2년 연속 구단 역대 최다관중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2009년 기아 타이거즈(582,005명)와 히어로즈(329,715명)도 구단 역대 최다관중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LG트윈스는 1995년 기록한 구단 역대 최다관중(1,264,762명)에 못 미치는 975,333명(경기당 14,778명)의 관중만을 기록했습니다.
2009년 서울 라이벌, 잠실 라이벌 두산 베어스가 1,053,966명의 관중으로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에 이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100만 관중을 기록한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2008년 LG트윈스는 806,662명(경기당 12,804명)의 관중을 기록했지만, 두산 베어스는 929,600명(경기당 14,756명)의 관중을 기록했습니다.
2009년 LG트윈스는 975,333명(경기당 14,778명)의 관중을 기록했지만, 두산 베어스는 1,053,966명(경기당 15,731명)의 관중을 기록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2008년, 2009년 2년 연속으로 서울 라이벌, 잠실 라이벌 LG트윈스보다 많은 관중을 기록한 것입니다.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2년 연속으로 LG트윈스(MBC 청룡)보다 많은 관중을 기록한 것은, OB 베어스와 MBC 청룡 시절인 1988년, 1989년에 이어 2번째이며, 무려 20년 만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이며, 28년 통산 19,446,443명의 관중으로 프로야구 통산 관중 1위 구단인 LG트윈스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무엇보다 잠실의 주인, 서울의 주인을 놓고 끝임 없이 경쟁해온 두산 베어스와의 관계에서 볼 때 용납하기 힘든 일입니다.
2009년 삼성 라이온즈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두산 베어스는 SK와이번스와 함께 2007년부터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록 중인 유이한 구단이 되었습니다.
2010년 LG트윈스가 2009년 105만 명이 넘는 관중을 기록한 두산 베어스를 제치려면,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야 합니다.
12. 2009년 하위권 전화번호 완성설
2003년 LG트윈스는 승률 0.458로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4년 LG트윈스도 승률 0.457로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5년 LG트윈스도 승률 0.432로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6년 LG트윈스도 승률 0.385로 8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7년 LG트윈스도 승률 0.483로 5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8년 LG트윈스도 승률 0.365로 8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9년 LG트윈스도 승률 0.406로 7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LG트윈스는 666-8587 전화번호 순위를 완성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5354860)
2009년 비어 있던 7위 자리를 채운 LG트윈스는 5위, 6위, 7위, 8위 하위권 순위를 모두 한 번 이상씩 기록했습니다.
5, 6, 7, 8을 한 번 이상씩 사용한 666-8587 7자리 전화번호의 완성이 의미하는 것은,
2010년에는 LG트윈스가 하위권 전화번호를 해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3. 이병규, 이진영, 김기태 우승 기운 완성설
2008년 11월 20일 LG트윈스는 SK와이번스 이진영과 약 4년 40억(추정)(보상금 7억 2000만원, 보상선수 이승호 별도)의 FA계약을 했습니다.
2009년 9월 28일 LG트윈스는 계약기간 3년 연봉 1억 계약금 별도의 계약으로 김기태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2010년 1월 8일 LG트윈스는 FA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했던 이병규와 2년 9억의 계약을 했습니다.
이병규는 2007년 주니치 드래곤즈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진영은 2008년 SK와이번스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김기태 2군 감독은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2010년 LG트윈스는 2007년 주니치 드래곤즈, 2008년 SK와이번스,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 기운으로 채워질 전망입니다.
14. 최소한의 양심설
LG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은 무려 16년 전인 1994년이었습니다.
1994년 LG트윈스의 우승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LG팬은 24살의 사회인 또는 대학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회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올해 못 보면 내년에 보고 내년에 못 보면 그 다음해에 볼 거라고 말할 만큼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던, 혹은 철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LG트윈스의 마지막 가을야구는 무려 8년 전인 2002년이었습니다.
월드컵, 아시안게임으로 시즌이 미뤄져 어느 해보다도 추운 바람 속에서 치러진 2002년 가을의 포스트시즌, LG트윈스는 어느 팀보다도 뜨거운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1년 9승 25패 승률 0.265의 압도적 꼴찌팀이었던 LG트윈스는 2002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양준혁이 FA 보상선수도 없이 삼성 라이온즈로 떠났음에도 현대 유니콘스, 기아 타이거즈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습니다.
운명의 2002년 11월 10일 한국시리즈 6차전, 2승 3패로 밀리던 LG트윈스는 9회말 1아웃까지 9대 6으로 앞서 있었습니다.
단 두 타자만 처리하면 3승 3패로 균형을 맞추고 분위기를 역전 시킬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이상훈, 1아웃 1, 2루가 되었고 타석에는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의 상대 타자가 들어섰습니다.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의 홈런왕 이승엽이었습니다.
이승엽은 동점 3점 홈런을 쳤고, 뒤이어 나온 마해영은 우승확정 끝내기 역전 연속타자 홈런을 쳤습니다.
감독도 코치도 선수들도 팬들도 모두 울었던 2002년 프로야구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LG트윈스 팬들을 기다린 것은 “당신야구는 김성근야구지, LG야구가 아냐.”라는 어윤태 LG트윈스 사장(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청장)의 김성근 감독 중도경질 통보였습니다.
고관절무혈괴사증으로 선수생명이 위태롭던 대타 김재현이 2타점 2루타성 타구를 치고 절뚝거리며 1루에 갔던 2002년 LG트윈스의 마지막 경기 후, 보름도 지나지 않은 2002년 11월 23일의 일이었습니다.
이상훈 등 선수들이 반발하고, 강추위 속에서 많은 팬들이 버스까지 동원해 그룹 본사와 농구팀 경기장에서 “‘정도 경영’ 추구해온 LG 그룹, 야구단은 ‘독재 경영’, 어윤태 사장, 유성민 단장 당신들은 팬들의 참뜻을 아느냐!”, “우승을 못하면 짤리니 꼭 우승하라”는 플래카드를 거는 등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윤태 LG트윈스 사장은, 팬들의 거센 반발에도 2002년 7위에 그쳐 한화 이글스와 재계약을 하지 못한 고려대 2년 후배 이광환 감독을 LG트윈스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http://blog.paran.com/law/36162088)
2003년 10월 22일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와의 선동열 감독 영입 경쟁에서 패배한 LG트윈스는 이광환 감독을 2군 감독으로 퇴진시키고 이순철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시키는 기이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LG트윈스는 2003년 11월 25일 기아 타이거즈 진필중을 FA로 영입(4년 30억, 보상선수 손지환 별도)했고,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04년 1월 14일 ‘김성근 감독 경질 비판’과 ‘기타 파동’ 등으로 구단 및 이순철 감독과 갈등이 있던 이상훈을 보복성 트레이드(LG트윈스 이상훈 대 SK와이번스 양현석, 오승준 1대 2 트레이드)했습니다(이상훈은 반 년 뒤 은퇴했습니다.).
2004년 11월 2일 LG트윈스 이순철 감독은 2군 투수력 강화라는 목적을 밝히고(이순철 감독의 광주동성고 후배이자 해태 타이거즈 후배 홍현우의 고향 복귀가 목적이었다는 추정도 있음) 2004년 2차 2번 지명자 이용규를 1년도 안 돼서 트레이드시켰습니다(LG트윈스 이용규, 홍현우 대 기아 타이거즈 소소경, 이원식 2대 2 트레이드).
유지현(연봉조정신청), 서용빈(병역비리 후 군 복무)이 이순철 감독, 구단 등과의 갈등 끝에 은퇴했습니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김재현은 2003년 그라운드에서 뛰기 위해 LG트윈스 구단 요구대로 “수술부위에 부상이 재발할 경우 본인이 책임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야했고, 2004년에도 각서파기요청을 거부한 LG트윈스를 떠나 SK와이번스와 FA계약을 했습니다.
LG트윈스 이순철 감독이 김재현의 보상선수로 택한 것은 31살의 3루수 안재만이었는데, 3루수 백업이 없는 SK의 전력약화를 노리고 데려왔다는 취지였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LG트윈스였지만 3루수는 많았던 점, SK와이번스에 잠재성 있는 선수들이 많았던 점, 2004년 SK와이번스는 포스트시즌 경력이 단 1회인 0.488 승률의 5위팀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지명이었습니다.
2004년말 LG트윈스 이순철 감독은 나이가 많아 불편하다며 김용수 코치를 해임하고, 잠실야구장 김용수 선수의 영구결번(41번) 유니폼 패널도 제거했습니다.
2006년 전까지 LG트윈스는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꼴찌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유이한 팀이었지만, 2006년 시즌 LG트윈스는 3할 대 승률의 꼴찌로 전락했습니다.
2006년 시즌 후 FA자격을 얻은 이병규는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습니다.
홍현우(4년 18억, 보상금 4억 2천만원, 보상선수 최익성 별도),
진필중(4년 30억, 보상금 8억 4천만원, 보상선수 손지환 별도),
마해영(4년 28억, 보상금 11억 4천만원, 보상선수 신동주 별도),
박명환(4년 40억, 보상금 11억 1천만원, 보상선수 신재웅 별도)의
FA 4인방은 법정소송까지 이어질 만큼 FA 잔혹사가 되었습니다.
반면 트레이드(LG트윈스 김상현, 박기남 대 기아 타이거즈 강철민 2대 1 트레이드)로 LG트윈스를 떠난 연봉 5200만원의 김상현은, 홈런왕, 타점왕, 장타율왕을 차지하며 (LG트윈스 선수는 한 번도 되지 못한) MVP가 되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은, 11년 동안 0.559의 승률로 8번의 포스트시즌 진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불과 52세에 무려 778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말 3년 15억 5천만원의 역대 최고대우를 받은 LG트윈스 김재박 감독은, 역대 LG트윈스 감독 7명(김성근 감독 승률 0.528, 이광환 감독 승률 0.526, 백인천 감독 승률 0.506, 천보성 감독 승률 0.500, 이광은 감독 승률 0.463, 이순철 감독 승률 0.431, 김재박 감독 승률 0.421) 중 최하위 승률로 재계약에 실패해 야인이 되었습니다.
LG트윈스는 2003년부터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대 프로야구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타이기록입니다.
http://blog.paran.com/law/35354860)
2010년 LG트윈스는 외야석 7,000원, 프리미엄석 50,000원 등으로 홈경기 입장권 가격을 대폭 인상했습니다.
프리미엄 패키지석 연간권의 경우 1좌석이 무려 535만원에 이릅니다.
안성덕 LG 트윈스 및 스포츠단 사장은 2010년 1월 6일 LG트윈스 신년 하례식 및 출정식에서 “팬들의 사랑과 인내도 한계가 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LG트윈스 팬들은 1994년부터 16년을, 2002년부터 8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LG트윈스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2010년 LG트윈스는 LG트윈스 팬들의 8년의 기다림, 16년의 기다림에 대한 답을 주어야만 합니다.
(스탯티즈 기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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