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野球 baseball

LG암흑기, 롯데 암흑기에 도전?

파란법 2009. 12. 14. 00:05
포스트시즌 연속 실패 역대 팀순위


1위.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7년의 암흑기

(1982년~1988년, 8개 팀 중 7.289위)


프로원년인 1982년 2월 5일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연고지는 인천, 경기도, 강원도, 이북5도였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홈구장인 인천 도원구장을 1982년 9월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개최에 대비한 야간조명 등 공사에 내주고 전기리그 내내 지방을 돌아다니는 특별경기를 했습니다.

인천 도원구장 대신 춘천구장에서 홈 개막전을 하고, 7월 17일에야 인천 도원구장에서 첫 경기를 했을 정도의 악조건이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사용(삼미특수강 창원공장 직원으로 파견 근무)이 팀 80경기 중 41경기에 등판해(16선발) 133 2/3이닝 1승 14패 1세이브를 던졌을 만큼 슈퍼스타즈라는 팀명과는 정반대의 선수구성이었습니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는 15승 65패 승률 0.188(팀타율 0.240보다도 훨씬 낮은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1982년 OB베어스 박철순이 22연승을 포함해 24승 4패 7세이브를 혼자 기록한 것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는 OB베어스와 16번 만나 16번 모두 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16전 전패).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는 1982년부터 1988년까지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1982년, 박현식 감독, 이선덕 감독대행, 전기리그 꼴찌, 후기리그 꼴찌, 전후기 합산 승률 0.18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1983년, 김진영 감독, 이재환 감독대행, 이선덕 감독대행, 박현식 감독대행, 전기리그 2위, 후기리그 3위, 전후기 합산 승률 0.525, 장명부 30승(6세이브, 427 1/3이닝)을 포함해 52승,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1984년, 김진영 감독, 전기리그 꼴찌, 후기리그 꼴찌, 전후기 합산 승률 0.392,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④ 1985년, 김진영 감독, 신용균 감독대행, 김진영 감독, 전기리그 꼴찌, 후기리그 4위, 전후기 합산 승률 0.35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5년 6월 29일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해 청보 핀토스 창단)

⑤ 1986년, 허구연 감독, 강태정 감독대행, 허구연 감독, 강태정 감독대행,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꼴찌, 전후기 합산 승률 0.302,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⑥ 1987년, 강태정 감독, 전기리그 꼴찌, 후기리그 6위, 전후기 합산 승률 0.38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8년 3월 8일 청보 핀토스를 인수해 태평양 돌핀스 창단)

⑦ 1988년, 강태정 감독, 임신근 감독대행,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꼴찌, 전후기 합산 승률 0.31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전후기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6+3+6+6+6+7+7 =) 41 / 45 (6팀 4시즌, 7팀 3시즌) = 0.9111 (8개 팀 중 7.289위)


1989년 태평양 돌핀스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이후 처음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지휘 하에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어울리는 선수들 자비로 떠난 한겨울 오대산 지옥훈련의 결과였습니다.

(1989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33,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3위)




2위. 롯데 자이언츠 7년의 암흑기

(2001년~2007년, 8개 팀 중 7.286위)


롯데 자이언츠는 1999년, 2000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1999년, 김명성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2위, 승률 0.591,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3패, 한국시리즈 한화 이글스 상대로 1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2000년, 김명성 감독, 정규시즌 매직리그 2위, 승률 0.504, 승률에서 앞선 드림리그 3위 삼성 라이온즈(승률 0.539)와 준플레이오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5위)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 포수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와의 잠실경기에서 2회초 2루 주자로 있다가 심장 부정맥으로 갑자기 쓰러져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1년 7월 17일 올스타전 롯데 팬클럽 거인뭉치 회원들이 내민 임수혁 격려문에 “임수혁 선수, 언제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될까요. 그 날을 기다리겠소.”라는 글을 쓴 김명성 감독은 일주일 후인 7월 24일 성적부진으로 인한 경질설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9년, 2000년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의 전설을 쓴 김명성 감독과 임수혁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2001년, 김명성 감독, 우용득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5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2002년, 우용득 감독, 김용희 감독대행, 백인천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265(팀타율 0.245보다는 높음),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2003년, 백인천 감독, 김용철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0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④ 2004년, 양상문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1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⑤ 2005년, 양상문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6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⑥ 2006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0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⑦ 2007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4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8+8+8+8+5+7+7 =) 51 / 56 (8팀 7시즌) = 0.9107 (8개 팀 중 7.286위)

소위 비밀번호 8888577이라고 불리는 암흑기였습니다.


김명성 감독의 별세 후 우용득 감독, 김용희 감독대행, 백인천 감독, 김용철 감독대행, 양상문 감독, 강병철 감독 등 누구도 롯데 자이언츠의 8888577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주 대행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국내 감독들 대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밀워키 브루어스 감독 경력)을 선임했습니다.

여기에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와의 잠실 경기 2회초 2루 주자 임수혁이 쓰러지던 순간 타석에 서있던 방졸 조성환이, 병역비리로 인한 6개월의 실형과 2년여의 공익근무 등 4년 가까운 공백을 이겨내고 골든글러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2000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8년 만에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09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했습니다.

1995년 LG트윈스가 13년 동안 가지고 있던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관중 기록(1,264,762명, 경기당 20,076명)을 2년 연속으로 갈아치운 것이 2008년(1,379,735명, 경기당 21,901명), 2009년(1,380,018명, 경기당 20,597명) 롯데 자이언츠였습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2010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가을야구를 한다면,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는 새 역사를 쓰게 됩니다.

(2008년, 로이스터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48,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0승 3패, 최종순위 3위)

(2009년, 로이스터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496, 준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1승 3패, 최종순위 4위)




3위. MBC청룡, LG트윈스 7년의 암흑기

(2003년~, 8개 팀 중 6.571위)


LG트윈스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습니다.

(2002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20, 준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2승 0패, 플레이오프 기아 타이거즈 상대로 3승 2패,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2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그러나 200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있고서 보름도 지나지 않은 11월 23일 어윤태 LG트윈스 사장(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청장)은, 팬들의 거센 반발에도 2002년 약한 전력을 가지고 준우승의 기적을 만든 김성근 감독을 중도경질하고, 2002년 7위에 그쳐 한화 이글스와 재계약을 하지 못한 고려대 2년 후배 이광환 감독을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2003년 10월 22일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와의 선동열 감독 영입 경쟁에서 패배한 LG트윈스는 이광환 감독을 2군 감독으로 퇴진시키고 이순철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시키는 기이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LG트윈스는 2003년 11월 25일 기아 타이거즈 진필중을 FA로 영입(4년 30억, 보상선수 손지환 별도)했고,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04년 1월 14일 ‘김성근 감독 경질 비판’과 ‘기타 파동’ 등으로 구단 및 이순철 감독과 갈등이 있던 이상훈을 보복성 트레이드(LG트윈스 이상훈 대 SK와이번스 양현석, 오승준 1대 2 트레이드)했습니다(이상훈은 반 년 후 은퇴).

2004년 11월 2일 LG트윈스 이순철 감독은 2군 투수력 강화라는 목적을 밝히고(이순철 감독의 광주동성고 후배이자 해태 타이거즈 후배 홍현우의 고향 복귀가 목적이었다는 추정도 있음) 2004년 2차 2번 지명자 이용규를 1년도 안 돼서 트레이드시켰습니다(LG트윈스 이용규, 홍현우 대 기아 타이거즈 소소경, 이원식 2대 2 트레이드).

유지현(연봉조정신청), 서용빈(병역비리 후 군 복무)이 이순철 감독, 구단 등과의 갈등 끝에 은퇴했습니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김재현은 2003년 그라운드에서 뛰기 위해 LG트윈스 구단 요구대로 “수술부위에 부상이 재발할 경우 본인이 책임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야했고, 2004년에도 각서파기요청을 거부한 LG트윈스를 떠나 SK와이번스와 FA계약을 했습니다.

LG트윈스 이순철 감독이 김재현의 보상선수로 택한 것은 31살의 3루수 안재만이었는데, 3루수 백업이 없는 SK의 전력약화를 노리고 데려왔다는 취지였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LG트윈스였지만 3루수는 많았던 점, SK와이번스에 잠재성 있는 선수들이 많았던 점, 2004년 SK와이번스는 포스트시즌 경력이 단 1회인 0.488 승률의 5위팀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지명이었습니다.

2004년말 LG트윈스 이순철 감독은 나이가 많아 불편하다며 김용수 코치를 해임하고, 잠실야구장 김용수 선수의 영구결번(41번) 유니폼 패널도 제거했습니다.

2006년 전까지 LG트윈스는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꼴찌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유이한 팀이었지만, 2006년 시즌 LG트윈스는 3할 대 승률의 꼴찌로 전락했습니다.

2006년 시즌 후 FA자격을 얻은 이병규는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습니다.

홍현우(4년 18억, 보상금 4억 2천만원, 보상선수 최익성 별도),

진필중(4년 30억, 보상금 8억 4천만원, 보상선수 손지환 별도),

마해영(4년 28억, 보상금 11억 4천만원, 보상선수 신동주 별도),

박명환(4년 40억, 보상금 11억 1천만원, 보상선수 신재웅 별도)의

FA 4인방은 법정소송까지 이어질 만큼 FA 잔혹사가 되었습니다.

반면 트레이드(LG트윈스 김상현, 박기남 대 기아 타이거즈 강철민 2대 1 트레이드)로 LG트윈스를 떠난 연봉 5200만원의 김상현은, 홈런왕, 타점왕, 장타율왕을 차지하며 (LG트윈스 선수는 한 번도 되지 못한) MVP가 되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은, 11년 동안 0.559의 승률로 8번의 포스트시즌 진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불과 52세에 무려 778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말 3년 15억 5천만원의 역대 최고대우를 받은 LG트윈스 김재박 감독은, 역대 LG트윈스 감독 7명(김성근 감독 승률 0.528, 이광환 감독 승률 0.526, 백인천 감독 승률 0.506, 천보성 감독 승률 0.500, 이광은 감독 승률 0.463, 이순철 감독 승률 0.431, 김재박 감독 승률 0.421) 중 최하위 승률로 재계약에 실패해 야인이 되었습니다.

LG트윈스는 2003년부터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① 2003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5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2004년, 이순철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5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2005년, 이순철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32,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④ 2006년, 이순철 감독, 양승호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8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⑤ 2007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8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⑥ 2008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6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⑦ 2009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06(2008년까지의 종전 승률제에 따르면 승률 0.41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6+6+6+8+5+8+7 =) 46 / 56 (8팀 7시즌) = 0.8214 (8개 팀 중 6.571위)

이는 역대 프로야구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타이기록입니다.


1982년 창단 이후 1988년까지 7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던 태평양 돌핀스는 1989년 김성근 감독이,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던 롯데 자이언츠는 2008년 로이스터 감독이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2010년 LG트윈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박종훈 감독은 1989년 김성근 감독, 2008년 로이스터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그러나 2010년 LG트윈스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면, LG트윈스는 역대 프로야구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신기록(8년)을 세우며, 7자리 전화번호(666-8587)를 8자리로(6668-587?) 바꾸게 됩니다.




4위. 쌍방울 레이더스 5년의 암흑기

(1991년~1995년, 8개 팀 중 7.6위)


1990년 3월 15일 쌍방울 레이더스가 프로야구 제8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연고지 전북 / 전주구장, 군산구장 사용).

그러나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은 불행히도 1989년, 1990년 노태우 민주정의당(민정당) 정권과 3당합당(1990년 1월 22일) 시절, 호남지역의 단결력을 줄이려는 시대적, 정치적인 성격이 있었습니다.

1989년 3월 22일 한일합섬이 마산 등 경상남도를 연고로 하겠다며 창단신청서를 먼저 제출했습니다.

1989년 4월 10일 쌍방울(70%), 미원(30%)이 연합해 전주 등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겠다며 뒤늦게 창단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창단에 대한 팬들의 호응과 시장성, 선수수급 등 전력, 운영능력 등 여러 면에서 경상남도를 연고로 하려한 한일합섬이 앞섰지만, 1989년 4월 말 한일합섬은 돌연 “표대결을 벌이면서까지 프로야구단을 유치할 생각은 없다.”며 창단을 포기했습니다.

1989년 KBO 이사회는 제8구단 창단에 대한 원칙을 세웠는데, 가입업체의 매출액이 연간 5천억 이상일 것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쌍방울은 연간 매출액 5천억 조건에 미달했고, 30% 지분으로 참여하겠다던 미원은 2000년 1월 6일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될 때까지 한 번도 운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http://blog.naver.com/humorland?Redirect=Log&logNo=140015158183 참조


신생팀으로 전력이 약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0년 시즌에는 1군이 아닌 2군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때문에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 시즌부터 1군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1995년까지는 연고팀 고등학교 졸업 선수를 신인지명 절차 없이 인원 제한 없이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최대 3명까지 고졸우선지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늦게 생긴 신생팀에다 연고지인 전라북도 지역에 고등학교 야구팀이 단 2개(전주고, 군산상고)에 불과했던 더욱이 열악한 재정난 탓으로 조진호 등 유망한 선수는 빼앗길 수밖에 없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1991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2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1992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2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1993년, 신용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361,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④ 1994년, 한동화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9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⑤ 1995년, 한동화 감독, 김우열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6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7+8+7+8+8 =) 38 / 40 (8팀 5시즌) = 0.95 (8개 팀 중 7.6위)

78788의 순위, 1990년 2군 리그 참가까지 포함하면 6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은커녕 6위 한 번도 없이 878788의 순위를 기록했습니다(쌍방울 레이더스의 꼴찌 아성을 무너뜨린 팀은 1991년 OB베어스, 1993년 태평양 돌핀스였습니다.).


그러나 1989년 한겨울 오대산 지옥훈련으로 꼴찌 태평양 돌핀스의 창단 8년 만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를 진정한 돌격대로 바꾸었습니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1위 해태 타이거즈에 불과 3승(3경기)이 뒤지는 2위를,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1위 해태 타이거즈에 불과 3.5경기 뒤지는 3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1996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63, 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3위)

(1997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71,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3위)




5위. OB베어스, 두산 베어스 5년의 암흑기

(1988년~1992년, 8개 팀 중 6.486위)


OB베어스는 1986년, 1987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1986년, 김성근 감독, 후기리그 1위,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2승 3패, 후기리그 승률 0.635, 전후기 합산 승률 0.538)

(1987년, 김성근 감독, 전기리그 2위, 플레이오프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2승 3패, 전기리그 승률 0.583, 전후기 합산 승률 0.514)


그러나 OB베어스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1988년, 김성근 감독,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전후기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전후기 합산 승률 0.50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1989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6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1990년, 이광환 감독, 이재우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1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④ 1991년, 이재우 감독, 윤동균 감독대행, 윤동균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1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⑤ 1992년 윤동균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6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5+5+7+8+5 =) 30 / 37 (7팀 3시즌, 8팀 2시즌) = 0.8108 (8개 팀 중 6.486위)


1993년 OB베어스는 1987년 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6년 만에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1993년, 윤동균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44, 준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3위)




6위. 해태 타이거즈, 기아 타이거즈 4년의 암흑기

(1998년~2001년, 8개 팀 중 5.75위)


해태 타이거즈는 1996년, 1997년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1996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587, 한국시리즈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우승)

(1997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599, 한국시리즈 LG트윈스 상대로 4승 1패, 한국시리즈 우승)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 기아 타이거즈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1998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8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1999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4위, 승률 0.46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2000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4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승률 0.442,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④ 2001년, 김성한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6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1년 8월 1일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해 기아 타이거즈 창단)

(5+7+6+5 =) 23 / 32 (8팀 4시즌) = 0.7188 (8개 팀 중 5.75위)


2002년 기아 타이거즈는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2002년, 김성한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605, 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3위)




7위. SK와이번스 3년의 암흑기

(2000년~2002년, 8개 팀 중 7위)


2000년 3월 31일 SK와이번스가 창단했습니다(연고지 인천, 경기, 강원 / 도원구장 사용).

신생팀 SK와이번스는 서울로 가려한 현대 유니콘스(연고지 없음 / 수원구장 임시 사용)에게 54억을 주고 인천, 경기, 강원 연고권을 넘겨받았습니다.

2000년 1월 6일 쌍방울 레이더스의 해체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은 야구 규약에 따라 전원 웨이버 공시가 되었습니다.

SK와이번스는, KBO와 구단 합의에 따라 웨이버 공시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과 개별적, 선별적으로 계약했습니다.

기존 구단들은 SK와이번스는 신생 창단 구단이므로, 쌍방울 레이더스가 지명했던 선수들에 대해 지명권은 SK와이번스에 줄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생팀 전력보강이라는 명분이 받아들여졌고, 사장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지명권도 SK와이번스에게 주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생팀 SK와이번스가 정상적인 전력의 팀이 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SK와이번스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2000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매직리그 4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승률 0.33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2001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5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2002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6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8+7+6 =) 21 / 24 (8팀 3시즌) = 0.875 (8개 팀 중 7위)


2003년 SK와이번스는 2000년 창단 이후 처음 포스트시즌(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정상의 문턱은 넘지 못했습니다.

(2003년, 조범현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08,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2승 0패, 플레이오프 기아 타이거즈 상대로 3승 0패, 한국시리즈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3승 4패)




8위.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 3년의 암흑기

(2002년~2004년, 8개 팀 중 6.333위)


한화 이글스는 2001년 승률 0.473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2001년 한화 이글스의 승률 0.473는 28년 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중 가장 낮은 정규시즌 승률입니다.

이는 4위 한화 이글스(승률 0.473)와 8위 롯데 자이언츠(승률 0.457)의 승차가 2경기에 불과했던 2001년 시즌의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2001년 한화 이글스는 659득점 733실점으로 기대승률 0.451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1년 8개 팀 중 기대승률 꼴찌 기록이었습니다(반면 팀순위 꼴찌 롯데 자이언츠는 718득점 670실점으로 기대승률 0.532,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01년 한화 이글스의 기대 승률 0.451, 기대 승률 꼴찌 역시 28년 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중 가장 낮은 기록, 유일한 기록입니다.

(2001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473, 준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0승 2패, 최종순위 4위)


한화 이글스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2002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61,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2003년, 유승안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92,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2004년, 유승안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1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7+5+7 =) 19 / 24 (8팀 3시즌) = 0.7917 (8개 팀 중 6.333위)

특히 유승안 감독은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를 이끈 감독 7명(배성서 감독, 김영덕 감독, 강병철 감독, 이희수 감독, 이광환 감독, 유승안 감독, 김인식 감독) 중 단 한 번도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한 유이한 감독(배성서 감독의 경우 1986년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 창단 감독으로 1987년까지 재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만큼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는 큰 암흑기 없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 팀이었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암흑기는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2005년 한화 이글스는 2001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4년 만에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2006년 한화 이글스도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2007년 한화 이글스도 플레이오프에 올랐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2005년부터 팀을 맡았고,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신인왕, MVP 동시석권에 빛나는 류현진은 2006년 2차 1순위(SK와이번스는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롯데 자이언츠는 류현진 대신 나승현을 지명)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습니다.

(2005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12, 준플레이오프 SK와이번스 상대로 3승 2패,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0승 3패, 최종순위 4위)

(2006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40, 준플레이오프 기아 타이어즈 상대로 2승 1패, 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3승 1패,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1무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2007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40,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2승 1패,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0승 3패, 최종순위 3위)




9위. 삼성 라이온즈 3년의 암흑기

(1994년~1996년, 8개 팀 중 5.333위)


삼성 라이온즈는 1986년부터 1993년까지 8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포스트시즌 티켓이 걸린 전기리그 1위, 후기리그 1위, 통합 승률 1위를 모두 차지해 그 해 한국시리즈, 포스트시즌 자체를 없앤 1985년 통합우승까지 포스트시즌에 포함시키면, 삼성 라이온즈는 1984년부터 1993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1984년, 김영덕 감독, 전기리그 1위, 한국시리즈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3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전기리그 승률 0.640, 전후기 합산 승률 0.550)

(1985년, 김영덕 감독, 전기리그 1위, 후기리그 1위, 통합우승, 전기리그 승률 0.741, 후기리그 승률 0.673, 전후기 합산 승률 0.706)

(1986년, 김영덕 감독, 전기리그 1위, 플레이오프 OB베어스 상대로 3승 2패,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1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전기리그 승률 0.722, 전후기 합산 승률 0.654)

(1987년, 박영길 감독, 전기리그 1위, 후기리그 1위,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0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전기리그 승률 0.611, 후기리그 승률 0.574, 전후기 합산 승률 0.593)

(1988년, 박영길 감독, 후기리그 2위, 플레이오프 빙그레 이글스 상대로 0승 3패, 후기리그 승률 0.620, 전후기 합산 승률 0.528) (전후기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1989년, 정동진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496, 준플레이오프 태평양 돌핀스에 1승 2패, 최종순위 4위)

(1990년, 정동진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58, 준플레이오프 빙그레 이글스에 2승 0패, 플레이오프 해태 타이거즈에 3승 0패, 한국시리즈 LG트윈스에 0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1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60, 준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에 2승 1무 1패, 플레이오프 빙그레 이글스에 1승 3패, 최종순위 3위)

(1992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40, 준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에 0승 2패, 최종순위 4위)

(1993년, 우용득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99, 플레이오프 LG트윈스에 3승 2패,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에 2승 1무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① 1994년, 우용득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84,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1995년, 우용득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50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③ 1996년, 백인천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4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5+5+6 =) 16 / 24 (8팀 3시즌) = 0.6667 (8개 팀 중 5.333위)

1982년부터 2009년까지 28년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5시즌(1983년, 1994년~1996년, 2009년)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삼성 라이온즈로서는 충격적인 암흑기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를 이끌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5명의 감독(감독대행 포함) 중 2명(서영무 감독, 이충남 감독대행)은 다시는 프로야구 감독을 하지 못했고, 또 다른 2명(우용득 감독, 백인천 감독)은 이후 5년 이상 쉬다가 차례로 롯데 자이언츠 암흑기 역사를 세우고 프로야구 감독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나머지 1명은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유일한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선동열 감독으로 2009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재계약(5년 27억)에 성공했습니다.


1997년 삼성 라이온즈는 199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4년 만에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3년의 암흑기를 무색하게 하는 12년간의 황금기(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신기록)의 시작이었습니다.

(1997년, 부정배트 시비 중이었던 LG트윈스의 조 알바레스 코치와의 몸싸움으로 고혈압, 뇌출혈을 일으킨 백인천 감독이 6월 23일 중도퇴진, 조창수 감독대행, 8월 1일 백인천 감독이 복귀했으나 전병호 구타 사건으로 9월 3일 다시 중도퇴진, 다시 조창수 감독대행, 정규시즌 4위, 승률 0.552, 준플레이오프 쌍방울 레이더스 상대로 2승 1패, 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4위)




10위. 히어로즈는 2008년 3월 24일 창단해 2년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기록만 씁니다.

① 2008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39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2009년, 김시진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51(2008년까지의 종전 승률제에 따르면 승률 0.45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스탯티즈 기록 참조)

프로야구 8개 구단 역사 바로알기

http://blog.paran.com/law/32294107

삼성 황금기, 해태 황금기 등 황금기 팀순위

http://blog.paran.com/law/3538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