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 연속 진출 황금기 팀순위


1위. 삼성 라이온즈 12년의 황금기

(1997년~2008년, 8개 팀 중 2.75위)


삼성 라이온즈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4년, 우용득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84,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5년, 우용득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50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6년, 백인천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4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2년부터 2009년까지 28년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5시즌(1983년, 1994년~1996년, 2009년)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삼성 라이온즈로서는 충격적인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① 1997년, 부정배트 시비 중이었던 LG트윈스의 조 알바레스 코치와의 몸싸움으로 고혈압, 뇌출혈을 일으킨 백인천 감독이 6월 23일 중도퇴진, 조창수 감독대행, 백인천 감독이 8월 1일 복귀했으나 전병호 구타 사건으로 9월 3일 다시 중도퇴진, 다시 조창수 감독대행, 정규시즌 4위, 승률 0.552, 준플레이오프 쌍방울 레이더스 상대로 2승 1패, 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4위

② 1998년, 서정환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32, 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1승 3패, 최종순위 3위

③ 1999년, 서정환 감독, 정규시즌 매직리그 1위, 승률 0.562, 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3승 4패, 최종순위 4위

④ 2000년, 김용희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3위, 승률 0.539, 승률에서 뒤진 매직리그 2위 롯데 자이언츠(승률 0.504)와 준플레이오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준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2승 1패, 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0승 4패, 최종순위 3위

⑤ 2001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09,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상대로 2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⑥ 2002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36, 한국시리즈 LG트윈스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우승 (1985년 통합우승 이후 무려 17년 만의 우승이었습니다.)

⑦ 2003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89, 준플레이오프 SK와이번스 상대로 0승 2패, 최종순위 4위

⑧ 2004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84,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3승 1패, 한국시리즈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2승 3무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⑨ 2005년, 선동열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06, 한국시리즈 두산베어스 상대로 4승 0패, 한국시리즈 우승

⑩ 2006년, 선동열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593, 한국시리즈 한화 이글스 상대로 4승 1무 1패, 한국시리즈 우승

⑪ 2007년, 선동열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08, 준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4위

⑫ 2008년, 선동열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16, 준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3승 0패,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2승 4패, 최종순위 4위

(4+3+4+3+2+1+4+2+1+1+4+4 =) 33 / 96 (8팀 12시즌) = 0.3438 (8개 팀 중 2.75위)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동안 포스트시즌 좌석 중 하나는 삼성 라이온즈의 고정석이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삼성 라이온즈는 승률 0.481의 5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9년, 선동열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81,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삼성 라이온즈를 5위로 미뤄내고 4위 가을야구 티켓을 얻은 것은 롯데 자이언츠(승률 0.496)였습니다.

2008년 SK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4강 구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대신해 4강에 오른 팀은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기아 타이거즈였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가 포스트시즌에 동반 진출한 것은 28년 프로야구 통산 불과 3번째(1991년, 1992년, 2009년)로 무려 17년만이었습니다.




2위. 해태 타이거즈, 기아 타이거즈 9년의 황금기

(1986년~1994년, 8개 팀 중 2.169위)


해태 타이거즈는 1984년, 1985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84년, 김응룡 감독, 전기리그 5위, 후기리그 3위, 전후기 합산 승률 0.44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5년, 김응룡 감독,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3위, 전후기 합산 승률 0.52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9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① 1986년, 김응룡 감독, 전기리그 2위(승률 0.654), 후기리그 2위(승률 0.635), 전후기 합산 승률 0.644,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1패, 한국시리즈 우승

② 1987년, 김응룡 감독, 전기리그 3위(승률 0.519), 후기리그 2위(승률 0.546), 전후기 합산 승률 0.532, 플레이오프 OB베어스 상대로 3승 2패,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0패, 한국시리즈 우승

③ 1988년, 김응룡 감독, 전기리그 1위(승률 0.639), 후기리그 1위(승률 0.639), 전후기 합산 승률 0.639(전후기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한국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우승

④ 1989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58, 플레이오프 태평양 돌핀스 상대로 3승 0패, 한국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상대로 4승 1패, 한국시리즈 우승

⑤ 1990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79,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0승 3패, 최종순위 3위

⑥ 1991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47, 한국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상대로 4승 0패, 한국시리즈 우승

⑦ 1992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67, 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3위

⑧ 1993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55,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1무 2패, 한국시리즈 우승

⑨ 1994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24, 준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상대로 0승 2패, 최종순위 4위

(1+1+1+1+3+1+3+1+4 =) 16 / 59 (7팀 5시즌, 8팀 3시즌) = 0.2712 (8개 팀 중 2.169위)

9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연패를 포함해 무려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것이 해태 타이거즈 황금기였습니다.


하지만 1995년 해태 타이거즈는 정규시즌 3위 롯데 자이언츠(승률 0.560)에 4.5경기 뒤지는 승률 0.524의 4위를 기록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5년, 김응룡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24,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이는 3, 4위의 승차가 3경기 이내일 경우에만 준플레이오프를 실시한다는 1995년 규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의 준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는, 정규시즌 3위 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직행 혜택(2위와 동일)과, 정규시즌 1위 OB베어스(승률 0.607)에 불과 0.5경기 뒤지고 정규시즌 3위 롯데 자이언츠(승률 0.560)에 5.5경기 앞선 정규시즌 2위 LG트윈스(승률 0.603)의 플레이오프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3위.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5년의 황금기

(2000년~2004년, 8개 팀 중 2위)


1998년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경기, 강원)야구팬들에게 첫 우승을 안겼습니다.

(1998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43, 한국시리즈 LG트윈스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우승)

그러나 1999년 현대 유니콘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1999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3위, 승률 0.53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0년 초에는 서울로 가기 위해 신생팀 SK 와이번스에 연고지를 54억에 팔고 인천(경기, 강원)을 버렸습니다(현대 유니콘스, 연고지 없음, 수원구장 임시 사용).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경기, 강원)을 버리고 서울을 택했으나 서울에 가지 못하고, ‘현대’ 간판으로 ‘삼성’도시 수원구장을 임시로 사용하면서 매년 서울을 노리는 소위 유목민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① 2000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1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승률 0.695,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0패,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상대로 4승 3패, 한국시리즈 우승

② 2001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58,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1승 3패, 최종순위 3위

③ 2002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47, 준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0승 2패, 최종순위 4위

④ 2003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11, 한국시리즈 SK와이번스 상대로 4승 3패, 한국시리즈 우승

⑤ 2004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586,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3무 2패, 한국시리즈 우승

(1+3+4+1+1 =) 10 / 40 (8팀 5시즌) = 0.25 (8개 팀 중 2위)


하지만 2005년 현대 유니콘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는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한화 이글스에 패했습니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는 6위를 차지하고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2008년 2월 19일 현대 유니콘스 해체).

(2005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3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6년, 김재박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60, 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상대로 1승 3패, 최종순위 3위)

(2007년, 김시진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4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4위.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 5년의 황금기

(1988년~1992년, 8개 팀 중 2.595위)


1986년 3월 8일 빙그레 이글스가 프로야구 제7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연고지 대전, 충청 / 대전구장, 청주구장 사용).

신생팀으로 전력이 약했던 빙그레 이글스는 1986년, 1987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86년, 배성서 감독, 전기리그 꼴찌, 후기리그 6위, 전후기 합산 승률 0.29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7년, 배성서 감독,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꼴찌, 전후기 합산 승률 0.45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그러나 한화 이글스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① 1988년, 김영덕 감독, 전기리그 2위(승률 0.630), 전후기 합산 승률 0.579(전후기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3승 0패,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2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② 1989년, 김영덕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04,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1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③ 1990년, 김영덕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75,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0승 2패, 최종순위 4위

④ 1991년, 김영덕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91,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3승 1패,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0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⑤ 1992년, 김영덕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51, 한국시리즈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1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2+2+4+2+2 =) 12 / 37 (7팀 3시즌, 8팀 2시즌) = 0.3243 (8개 팀 중 2.595위)

6할이 넘는 승률로 정규시즌 1위를 2번했지만, 1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4번이나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강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강하지 못했던 빙그레 이글스의 황금기였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첫 우승이자 2009년까지 유일한 우승은 7년 뒤인 1999년 이희수 감독이 달성합니다.)


1993년 빙그레 이글스는 승률 0.500의 5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3년, 김영덕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50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빙그레 이글스의 황금기를 이끈 김영덕 감독은 1992년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시킨 강병철 감독에게 자리를 내주고 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인 1993년 11월 1일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칭을 변경합니다.

빙그레 이글스의 마지막 감독은 김영덕 감독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빙그레 이글스는 김영덕 감독의 마지막 팀이 되었습니다.




5위. OB베어스, 두산 베어스 4년의 황금기

(1998년~2001년, 8개 팀 중 2.5위)


OB베어스는 1996년, 1997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6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9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7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72,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그러나 OB베어스, 두산 베어스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① 1998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496, 준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0승 2패, 최종순위 4위 (1999년 1월 5일 두산베어스로 구단명칭 변경)

② 1999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1위, 승률 0.598, 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상대로 0승 4패, 최종순위 3위

③ 2000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2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승률 0.571, 플레이오프 LG트윈스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3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④ 2001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08, 준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상대로 2승 0패, 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3승 1패,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우승

(4+3+2+1 =) 10 / 32 (8팀 4시즌) = 0.3125 (8개 팀 중 2.5위)


OB베어스, 두산베어스는 1997년 5위, 1998년 4위, 1999년 3위, 2000년 준우승, 2001년 우승으로 5년간 매년 한 계단씩 순위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2001년 우승으로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어진 두산 베어스는 2002년 5위, 2003년 7위로 내려갔고, 1998년부터 2001년까지의 두산 베어스의 황금기를 이끈 김인식 감독도 팀을 떠났습니다.

(2002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504,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3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3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6위. SK와이번스 3년의 황금기

(2007년~, 8개 팀 중 1.333위)


2006년 SK와이번스는 승률 0.480의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0승 투수 한 명 없이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신승현(8승, 107 1/3이닝), 정대현(8승, 74 1/3이닝)이 최다승 투수였습니다.

2006년 18승 신인왕, MVP 류현진(인천 동산고등학교 졸업)을 1차지명할 권리가 있었던 SK와이번스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투수진이었습니다.

(2006년, 조범현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8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그러나 신생팀, 약팀이었던 SK와이번스는 2007년부터 최강팀으로 변모합니다.

① 2007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03,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상대로 4승 2패, 한국시리즈 우승

② 2008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59,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상대로 4승 1패, 한국시리즈 우승

③ 2009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602(2008년까지의 종전 승률제에 따르면 승률 0.630로 1위),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3승 2패, 한국시리즈 기아 타이거즈 상대로 3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1+1+2 =) 4 / 24 (8팀 3시즌) = 0.1667 (8개 팀 중 1.333위)


SK와이번스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연속 6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최초의 기록입니다.

SK와이번스의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 포스트시즌 1위 동시 달성 기록은 1996년, 1997년 우승한 해태 타이거즈(1998년 5위), 2003년, 2004년 우승한 현대 유니콘스(2005년 7위), 2005년, 2006년 우승한 삼성 라이온즈(2007년 4위)에 이은 프로야구 역대 4번째 기록입니다.

더불어 창단 첫 우승이 2년 연속 우승으로 이어진 팀은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SK와이번스가 유일합니다(이전까지는 1998년 첫 우승한 현대 유니콘스가 2000년 다시 우승한 것이 가장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SK와이번스는 2007년 한국 프로야구 팀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우승팀을 꺾었고(2007년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6대 3 승리), 2008년에도 일본시리즈 우승팀을 꺾었습니다(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게 4대 3 승리).

SK와이번스는 인천(경기, 강원)팀 역대 최다관중기록(1994년, 태평양 돌핀스 476,277명, 경기당 7,560명), 구단 역대 최다관중기록(2005년, 458,121명, 경기당 7,272명)을, 3년 연속(2007년, 656,426명, 경기당 10,419명)(2008년, 754,247명 경기당 11,972명)(2009년, 841,270명, 경기당 12,556명) 경신했습니다.

SK와이번스가 창단한 2000년 관중수가 84,563명(경기당 1,281명), SK와이번스 조범현 감독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6년 관중수가 331,143명(경기당 5,256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발전입니다.




7위. MBC청룡, LG트윈스 3년의 황금기

(1993년~1995년, 8개 팀 중 2.667위)


LG트윈스는 1991년, 1992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1년, 백인천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2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2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3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그러나 LG트윈스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① 1993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536, 준플레이오프 OB베어스 상대로 2승 1패,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4위

② 1994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1위, 승률 0.643, 한국시리즈 태평양 돌핀스 상대로 4승 0패, 한국시리즈 우승

③ 1995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603, 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2승 4패, 최종순위 3위

(4+1+3 =) 8 / 24 (8팀 3시즌) = 0.3333 (8개 팀 중 2.667위)

LG트윈스는 1993년 1,154,308명(경기당 18,322명), 1994년 1,022,324명(경기당 16,227명), 1995년 1,264,762명(경기당 20,076명)의 관중을 기록했는데,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3년 연속으로 100만 관중을 기록한 팀은 1993년~1995년 LG트윈스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1996년 LG트윈스는 승률 0.417의 7위로 추락했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의 LG트윈스의 황금기를 이끈 이광환 감독도 시즌 중 경질되었습니다.

(1996년, 이광환 감독, 천보성 감독대행, 정규시즌 7위, 승률 0.41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8위. 롯데 자이언츠 2년의 황금기

(1991년~1992년, 8개 팀 중 2.5위) (1999년~2000년, 8개 팀 중 3.5위) (2008년~, 8개 팀 중 3.5위)


(1) 롯데 자이언츠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85년, 강병철 감독, 전기리그 4위, 후기리그 2위, 전후기 합산 승률 0.536, 승률로 보아 준우승이지만 삼성 라이온즈가 포스트시즌 티켓이 걸린 전기리그 1위, 후기리그 1위, 통합 승률 1위를 모두 차지해 통합우승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6년, 강병철 감독,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 전후기 합산 승률 0.49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7년, 성기영 감독, 전기리그 4위, 후기리그 3위, 전후기 합산 승률 0.52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88년, 어우홍 감독, 전기리그 4위, 후기리그 4위, 전후기 합산 승률 0.53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전후기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1989년, 어우홍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21,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0년, 김진영 감독, 도위창 감독대행, 정규시즌 6위, 승률 0.388,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6년 중 승률 5할을 넘긴 것이 3차례나 될 정도로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성적이었습니다.

다만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야구 출범 후 3년만인 1984년 우승을 했던 점, 최악의 전력, 낮은 승률로 보약을 주고 꼴찌를 도맡아서 한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효과가 있었다는 점, 1989년 단일통합리그제 실시 후에는 1989년 승률 0.421 꼴찌, 1990년 승률 0.388 (7팀 중) 6위로 극히 부진했다는 점에서 부족한 성적이었습니다.


1986년 강병철 감독을 시작으로 1987년 성기영 감독, 1989년 어우홍 감독, 1990년 김진영 감독, 1990년 도위창 감독대행이 전사한 롯데 자이언츠 감독 자리에 1991년 나타난 감독은 다시 강병철 감독이었습니다.

강병철 감독은 1984년 삼성 라이온즈의 2경기 져주기 경기로 2승을 거둔 것을 제외하면 정확히 5할 승률을 거두고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실력을 다시 발휘했습니다.

1991년 강병철 감독은 5할이 안 되는 0.496 승률로 롯데 자이언츠를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시켰습니다(1984년 강병철 감독 한국시리즈 우승 -> 1991년 강병철 감독 준플레이오프 진출).

1984년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에게 최동원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었다면, 1992년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에게는 염종석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었습니다(롯데 자이언츠가 2006년 신인 2차 1순위 지명 당시 나승현 대신 류현진을 지명했다면 2006년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에게도 류현진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전가의 보도를 든 강병철 감독은 1992년에도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① 1991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496,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1무 2패, 최종순위 4위

② 1992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63,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2승 0패, 플레이오프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3승 2패, 한국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상대로 4승 1패, 한국시리즈 우승

(4+1 =) 5 / 16 (8팀 2시즌) = 0.3125 (8개 팀 중 2.5위)


그러나 1993년 롯데 자이언츠는 승률 0.496의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83년~1986년에 이어 1991년~1993년에도 롯데 자이언츠를 맡았던 강병철 감독도 한화 이글스로 떠났습니다.

(1993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96,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 롯데 자이언츠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6년, 김용희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76,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7년, 김용희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8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8년, 김용희 감독, 김명성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1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는 1999년, 2000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다시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① 1999년, 김명성 감독, 정규시즌 드림리그 2위, 승률 0.591,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4승 3패, 한국시리즈 한화 이글스 상대로 1승 4패, 한국시리즈 준우승

② 2000년, 김명성 감독, 정규시즌 매직리그 2위, 승률 0.504, 승률에서 앞선 드림리그 3위 삼성 라이온즈(승률 0.539)와 준플레이오프(양대리그 체제의 마지막 시즌),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5위

(2+5 =) 7 / 16 (8팀 2시즌) = 0.4375 (8개 팀 중 3.5위)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포수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와의 잠실경기에서 2회초 2루 주자로 있다가 심장 부정맥으로 갑자기 쓰러져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1년 7월 17일 올스타전 롯데 팬클럽 거인뭉치 회원들이 내민 임수혁 격려문에 “임수혁 선수, 언제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될까요. 그 날을 기다리겠소.”라는 글을 쓴 김명성 감독은 일주일 후인 7월 24일 성적부진으로 인한 경질설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9년, 2000년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의 전설을 쓴 김명성 감독과 임수혁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2001년, 김명성 감독, 우용득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5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2년, 우용득 감독, 김용희 감독대행, 백인천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265(팀타율 0.245보다는 높음),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3년, 백인천 감독, 김용철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0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4년, 양상문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410,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5년, 양상문 감독, 정규시즌 5위, 승률 0.46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6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0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7년, 강병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4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8+8+8+8+5+7+7 =) 51 / 56 (8팀 7시즌) = 0.9107 (8개 팀 중 7.286위)

소위 비밀번호 8888577이라고 불리는 암흑기였습니다.


(3) 김명성 감독의 별세 후 우용득 감독, 김용희 감독대행, 백인천 감독, 김용철 감독대행, 양상문 감독, 강병철 감독 등 누구도 롯데 자이언츠의 8888577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주 대행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국내 감독들 대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밀워키 브루어스 감독 경력)을 선임했습니다.

여기에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와의 잠실 경기 2회초 2루 주자 임수혁이 쓰러지던 순간 타석에 서있던 방졸 조성환이, 병역비리로 인한 6개월의 실형과 2년여의 공익근무 등 4년 가까운 공백을 이겨내고 골든글러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2000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8년 만에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09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했습니다.

1995년 LG트윈스가 13년 동안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관중 기록(1,264,762명, 경기당 20,076명)을 2년 연속으로 갈아치운 것이 2008년(1,379,735명, 경기당 21,901명), 2009년(1,380,018명, 경기당 20,597명) 롯데 자이언츠였습니다.

① 2008년, 로이스터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48,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0승 3패, 최종순위 3위

② 2009년, 로이스터 감독, 정규시즌 4위, 승률 0.496, 준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상대로 1승 3패, 최종순위 4위

(3+4 =) 7 / 16 (8팀 2시즌) = 0.4375 (8개 팀 중 3.5위)


롯데 자이언츠가 2010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가을야구를 한다면,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는 새 역사를 쓰게 됩니다.




9위. 쌍방울 레이더스 2년의 황금기

(1996년~1997년, 8개 팀 중 3위)


1990년 3월 15일 쌍방울 레이더스가 프로야구 제8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연고지 전북 / 전주구장, 군산구장 사용).

신생팀으로 전력이 약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0년 시즌에는 1군이 아닌 2군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때문에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 시즌부터 1군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1995년까지는 연고팀 고등학교 졸업 선수를 신인지명 절차 없이 인원 제한 없이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최대 3명까지 고졸우선지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늦게 생긴 신생팀에다 연고지인 전라북도 지역에 고등학교 야구팀이 단 2개(전주고, 군산상고)에 불과했던 더욱이 열악한 재정난 탓으로 조진호 등 유망한 선수는 빼앗길 수밖에 없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1991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42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2년, 김인식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2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3년, 신용균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361,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4년, 한동화 감독,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93,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995년, 한동화 감독, 김우열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369,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7+8+7+8+8 =) 38 / 40(8팀 5시즌) = 0.95 (8개 팀 중 7.6위)

78788의 순위, 1990년 2군 리그 참가까지 포함하면 6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은커녕 6위 한 번도 없이 878788의 순위를 기록했습니다(쌍방울 레이더스의 꼴찌 아성을 무너뜨린 팀은 1991년 OB베어스, 1993년 태평양 돌핀스였습니다.).


그러나 1989년 한겨울 오대산 지옥훈련으로 꼴찌 태평양 돌핀스의 창단 8년 만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를 진정한 돌격대로 바꾸었습니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1위 해태 타이거즈에 불과 3승(3경기)이 뒤지는 2위를,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1위 해태 타이거즈에 불과 3.5경기 뒤지는 3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① 1996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2위, 승률 0.563, 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2승 3패, 최종순위 3위

② 1997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3위, 승률 0.571,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1승 2패, 최종순위 3위

쌍방울 레이더스가 포스트시즌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시기였습니다.

가난하지만 강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외인구단’,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재정난을 겪던 모기업의 1997년 부도는 벼랑 끝에서 돌격대 정신을 발휘하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아예 벼랑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선수들이 여관, 분식점, 공원을 전전했고,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르기도 하고,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조규제, 박경완, 김기태, 김현욱 등 투타 핵심 선수들, 마일영, 라형진 등 선수지명권까지 사실상 현금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습니다.

선수들 숙식비용을 위해 김성근 감독이 사비를 털 정도였습니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신인지명을 받은 선수는 13명이었지만, 감독, 선수의 연봉, 운영비도 없는 쌍방울 레이더스에게 신인선수 몫의 계약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다른 팀이 여러 명의 신인선수를 영입하는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 등이 1억의 계약금을 갹출해 간신히 입단시킨,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 유니폼을 입은 유일한 선수가 이진영이었을 정도입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선수자원이 풍족하고 재정이 넉넉한 팀이 거액 뒷돈을 들인 외국인 선수에 조규제, 박경완, 김기태, 김현욱 등 핵심 선수들을 계속 데려가는 상황에서도 방출된 선수들로 돌격대 정신으로 버텼지만 결국 IMF에 항복한 대한민국처럼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1월 6일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98년, 김성근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68, 포스트시즌 실패)

(1999년, 김성근 감독, 김준환 감독대행, 정규시즌 꼴찌, 승률 0.224, 포스트시즌 실패)

구단 해체로 야규 규약에 따라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은 전원 웨이버 공시가 되었습니다.

다만 KBO와 구단 합의에 따라 웨이버 공시된 대부분의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은 약 3달 뒤인 3월 31일 인천, 경기, 강원 지역에 새로 창단한 SK와이번스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10위. 히어로즈는 2008년 3월 24일 창단해 2년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기록만 씁니다.

① 2008년, 이광환 감독, 정규시즌 7위, 승률 0.397,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② 2009년, 김시진 감독, 정규시즌 6위, 승률 0.451(2008년까지의 종전 승률제에 따르면 승률 0.455),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스탯티즈 기록 참조)

LG암흑기, 롯데 암흑기에 도전?(포스트시즌 연속 실패 역대 팀순위)

http://blog.paran.com/law/35354860

Posted by 파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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