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나비효과 프로야구를 삼키다.


0. 2009년 김상현은 홈런 1위, 타점 1위의 기아 타이거즈 5번 타자입니다.


김상현은 타율 0.301(13위), 24홈런(공동 1위), 96타점(1위), 출루율 0.365(22위), 장타율 0.586(5위), OPS 0.950(8위), 55득점(공동 20위), 104안타(16위), 3도루(공동 54위)의 뛰어난 성적으로 강력한 MVP 후보 중 한 명입니다.


1980년대(1982년~1989년) 9번의 홈런왕 타이틀 중 5번(1982년 홈런왕 김봉연, 1985년 홈런왕 김성한, 1986년 홈런왕 김봉연, 1988년 홈런왕 김성한, 1989년 홈런왕 김성한)을 차지할 만큼 최강의 투수력 못지않은 최강의 타력을 자랑했던 해태-기아 타이거즈는, 20년째 홈런왕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태-기아 타이거즈(1982년 타점왕 김성한, 1986년 타점왕 김봉연, 1988년 타점왕 김성한)가 타점왕을 배출한 것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김상현이 나타났습니다.

해태-기아 타이거즈 팬들이 20년 넘게 기다린 김봉연의 후계자이자, 등번호 27번의 후계자가 나타났습니다.

1982년, 1986년 홈런왕 김봉연, 1991년 20홈런 20도루 이호성이 해태 타이거즈에서 달았던 27번을, 기아 타이거즈 김상현이 쓰고 있습니다.

11년 만에 광주구장에서 열린 2009년 올스타전의 시구를 했던 김봉연 극동대 교수도, SK와이번스 김성근 감독도 깜짝 놀랐다고 할 만큼, 군산상고 후배 김상현은 군산상고 선배 김봉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김상현은 통산 12명의 선수가 21차례 달성했을 뿐인 3할 30홈런 100타점 클럽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3할 30홈런 100타점 클럽은 2004년 현대 유니콘스 브룸바가 달성한 것이 마지막입니다.

김상현의 현재 기록을 133경기로 환산하면, 타율 0.301, 29홈런, 116타점이 됩니다.

쉬운 도전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한 도전입니다.

2009년이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1999년 다음의) 두 번째 타고투저 시즌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김상현의 2009년은 위대한 시즌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합니다.


김상현이 가세한 기아 타이거즈는 1997년 이후 12년 만의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홈런왕, 타점왕이자 해결사 김상현이 없었다면, 최희섭의 2009년 부활도, 잘 던진 선발투수들이 승리를 거두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김상현 트레이드는 2009년 최고의 선택이자, 기아 타이거즈 최고의 선택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2009년 기아 타이거즈로의 트레이드 전까지, 김상현 카드를 가질 기회는, 기아 타이거즈 이외의 다른 팀들에게 먼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기아 타이거즈가 김상현 카드 아닌 다른 내야수 카드를 선택할 가능성 또한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야구인들 중 2008년까지의 김상현이 2009년 김상현이 될 가능성을 높게 본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1. 2008년 김상현은 LG트윈스에 있었습니다.


김상현(1980년 11월 12일생, 군산상고)은 2000년 2차지명 42번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되어 2001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했습니다.

1군 출장기회가 많지 않았던 김상현은, 2002년 7월 28일 LG트윈스 마무리 이상훈을 상대로 9회 대타 동점 2점 홈런(김상현의 2002년 유일한 홈런이자, 김상현의 통산 두 번째 홈런)을 치고 LG트윈스에 오게 됩니다.

김상현의 타격을 눈여겨 본 LG트윈스 김성근 감독이 프런트에 강력히 주장해 불과 3일 뒤인 7월 31일 좌완투수 방동민(기아 타이거즈 이적 후 2005년까지 8이닝 투구에 그침)을 주고 김상현을 받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입니다.


2008년까지 김상현의 프로 6년간 통산성적은, 398경기 1264타석 타율 0.245, 33홈런, 132타점, 출루율 0.324, 장타율 0.395, OPS 0.719, 142득점, 270안타, 22도루, 56실책이었고,

김상현의 2008년 성적은, 75경기 243타석 타율 0.243, 8홈런, 18타점, 출루율 0.311, 장타율 0.416, OPS 0.727, 28득점, 52안타, 2도루, 9실책이었습니다.

2008년 김상현은 공격, 수비, 주루 모두 주전 3루수로서는 부족했습니다.

힘과 장타력으로 2군 리그를 초토화시킨 김상현의 유망주로서의 가치는, 30을 두 달 남긴 29살이라는 숫자만큼이나, 미묘한 것이었습니다.


2008년 LG트윈스는 27년 LG트윈스 팀 역사상 최저승률(2008년 46승 80패 승률 0.357, 1988년 승률 0.385, 2006년 승률 0.385)과, 27년 LG트윈스 팀 역사상 두 번째 꼴찌(2008년 김재박 감독 8위, 2006년 이순철 감독, 양승호 감독대행 8위)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2002년 준우승 이후 6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LG트윈스는, 최고대우 3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앞둔 LG트윈스 김재박 감독은, 시간과 여유가 없었습니다.

LG트윈스는 2008년 11월 20일 1위팀 SK와이번스의 외야수로 1루 겸업이 가능한 이진영을 약 4년 40억(추정)(보상금 내지 보상금 및 보상선수 별도)에 FA로 영입했습니다.

LG트윈스는 2008년 11월 21일 7위팀 히어로즈 정성훈도 약 4년 30억(추정)(보상금 내지 보상금 및 보상선수 별도)에 FA로 영입했습니다.


그 결과 1루수, 지명타자 주전을 나누어 맡았던 페타지니, 최동수가 건재하고, 3루수 백업으로 박기남, 김태완, 이종열, 박용근 등이 경쟁할 상황에서,

수비와 주루에서 부족함이 많은, 또한 이를 상쇄할 충분한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한 김상현은 2008년에 비해 가장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2008년 김상현이 2009년 활약의 절반이라도 보여주었다면, 혹은 기아 타이거즈 등 다른 구단들이 3루수 정성훈을 FA로 영입했다면,

LG트윈스의 FA선수 영입은 달라졌을 것이고, LG트윈스가 김상현 카드를 버리는 것은 훨씬 어려운 선택이 되었을 것입니다.

2009년 LG트윈스 팬들의 김상현을 향한 응원이, 2008년까지 김상현을 향해 한 응원과 같았을지, 2009년 기아 타이거즈 팬들이 김상현을 향해 하고 있는 열광적인 응원과 같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2009년에도 김상현은 LG트윈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2. SK와이번스는 2008년 11월에 김상현을 택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2008년 11월 20일 SK와이번스의 외야수로 1루 겸업이 가능한 이진영이, 약 4년 40억(추정)(보상금 내지 보상금 및 보상선수 별도)에 LG트윈스와 FA계약을 했습니다.

SK와이번스는 18명의 보호선수 외의 명단을 LG트윈스로부터 받았는데, 여기에는 김상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성훈의 FA 영입 후 김상현은 18인 보호선수에 포함되지 못할 만큼 LG트윈스에서의 입지가 약해진 것입니다.


SK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 2009년 밝혔듯이, SK와이번스는 이승호와 김상현을 중심으로 고민한 끝에 김상현이 아닌 이승호를 이진영 FA 보상선수로 선택했습니다.

1987년생으로 2008년 타율 3위, OPS 6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최정과 김연훈, 모창민 등이 지킬 3루, 이호준, 박정권, 김재현, 이재원 등이 지킬 1루, 지명타자는 여유가 있는데 비해, 이영욱, 조영민의 군입대, 레이번의 재계약 포기, 윤길현 등의 부상으로 인한 상반기 결장, 김원형, 가득염, 조웅천, 정우람 등의 구위하락 예상(이상 모두 투수) 등으로 투수진 보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투수진의 공백이 클 것이라는 김성근 감독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그러나 2009년이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1999년 다음의) 두 번째의 타고투저 임에도, WBC 후유증에 압도적, 기록적인 사구를 맞은 부상 등으로 2007년, 2008년 SK와이번스 주전 3루수 최정의 2009년 타율은 2008년 0.328(3위)에서 2009년 0.253(37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무엇보다 2003년 방어율 2위(3.19, 1위 바워스 3.01), 다승 6위(11승, 1위 정민태 17승), 탈삼진 1위(157탈삼진), 이닝 1위(191 2/3이닝), 2004년 129 2/3이닝(21위) 방어율 2.71(규정이닝 채웠다면 4위) 9승(13위) 115탈삼진(11위)으로 무너진 LG트윈스의 에이스였던, 이진영의 보상선수 이승호는 2009년 5월 재활기간 4개월의 수술을 받고 2009시즌을 사실상 마감했습니다.

최정의 공백 아닌 공백이 생긴 후 (기아 타이거즈와의 채종범, 이성우, 김형철(이상 SK와이번스 선수) 대 전병두, 김연훈(이상 기아 타이거즈 선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김연훈이, (2할 대에 불과한 2009년 2군 성적과 대조적으로,) 53경기 130타석 타율 0.325, 출루율 0.368, 장타율 0.421, OPS 0.789의 괜찮은 공격력과, 뛰어난 작전수행능력, 내야 유틸 수비능력으로 큰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거의 유일하게 위안이 될 뿐입니다.

다만 130타석 9볼넷 26삼진이라는 김연훈의 볼넷, 삼진 수치가 보여주듯이, 김연훈은 풀타임 선발 3루수, 포스트시즌 선발 3루수로서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홈런 1위, 타점 1위, 3할 타율로 강력한 MVP 후보 중 하나로 거듭난 김상현 카드를 택하지 않은 것은, SK와이번스로서는 분명 안타까운 선택이 되었습니다.

SK와이번스가 김상현 카드를 택하고, 김상현이 최정, 이재원의 자리를 차지해 2009년 현재의 활약을 보여주었다면, FA 보상선수가 FA 선수보다도 뛰어난 활약을 하는 또 하나의 이변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김상현이 고향 팀이자, 데뷔한 팀인 기아 타이거즈가 아닌 SK와이번스에서 지금의 성적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기아 타이거즈를 상대로 14승 4패의 압도적인 상대전적을 자랑했던 SK와이번스는, 2009년에는 기아 타이거즈를 상대로 5승 7패 2무승부(사실상 5승 9패)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SK와이번스를 상대로 타율 0.341, 출루율 0.413, 장타율 0.829, OPS 1.242, 여러 차례의 결승타를 포함해 6홈런 11타점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2008년에는 없었던 김상현의 활약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SK와이번스가 김상현 카드를 택했다면, 최소한 2009년의 무시무시한 김상현을 상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2009년 기아 타이거즈를 상대로 이처럼 고전했을 가능성도 적었을 것이며, 2007년, 2008년 연속 우승팀 SK와이번스의 경쟁 팀은 2009년에도 기아 타이거즈가 아닌 두산 베어스가 되었을 가능성도 컸을 것입니다.

(특히 기아 타이거즈와의) 남은 정규시즌 결과 및 포스트 시즌 결과에 따라서는,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두 번째(1989년 이후 단일통합리그제에서는 사상 최초의) 3년 연속 정규시즌 1위 기록,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두 번째(1989년 이후 단일통합리그제에서는 사상 최초의)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최초의 3년 연속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기록에 도전하는 2009년 SK와이번스가 김상현 카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통한의 결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히어로즈가 택할 보상선수 명단에 김상현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2009년 LG트윈스에서 김상현의 입지가 작았던 점, SK와이번스 측에 제공된 보상선수 명단에 김상현이 빠져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히어로즈 역시 김상현을 택할 권리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어로즈 3루수였던 정성훈의 FA 보상선수라는 점에서, SK와이번스 측에 제공된 보상선수 명단과 달리 히어로즈가 택할 보상선수 명단에는 김상현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11월 27일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이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을 택하면서,

“뽑을 수 있는 선수는 3루수 서동욱 정도였는데 차라리 우리 선수를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우리팀 외야는 넘치는 편이다. 내야를 보강하려고 선수명단을 봤지만 서동욱 정도만 눈길을 끌었다.”

라고 발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811280269


정성훈을 FA로 LG트윈스에 보낸 히어로즈는, 9억 6천만원(2008년 정성훈 연봉 3억 2천만원의 300%)의 보상금과 보상선수 1명(가령 서동욱) 대신, 14억 4천만원(2008년 정성훈 연봉 3억 2천만원의 450%)을 선택했습니다.

히어로즈가 재정적인 부분 등 여러 면에서 다른 구단과 다르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4. 히어로즈를 포함한 다른 구단들 역시, SK와이번스와의 일종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혹은 LG트윈스와의 직접 트레이드를 통해 김상현을 트레이드해 올 수 있었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정수근을 FA로 롯데 자이언츠로 보내고 보상선수로 문동환을 받은 두산 베어스(김경문 감독)가, 하루도 안돼서 문동환과 한화 이글스 채상병을 트레이드한 사례가 있듯이, 보상선수를 포함한 삼각 트레이드는, 메이저리그, 소설, 만화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히어로즈를 포함한 다른 구단들이, 이진영의 FA 보상선수 선택 전 SK와이번스에 이승호(군산상고, SK와이번스 데뷔 이승호가 아닌, 선린상고, 단국대, LG트윈스 데뷔 이승호) 이상의 투수를 제시했다면, SK와이번스는 보상선수로 김상현을 선택했을 것이고, 김상현은 SK와이번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구단의 선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2009년 김상현에게 불과 8타석의 기회만 주고, 김상현에 수비와 주루가 뛰어난 훌륭한 백업 3루수 박기남까지 얹어, 2006년 오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기아 타이거즈의 재활투수 강철민과 트레이드했을 만큼, 2009년 LG트윈스는 김상현의 입지는 좁았고, 투수진을 보충할 필요는 컸습니다.

‘김상현+박기남=강철민’ 트레이드 등식을 받아들일 만큼 트레이드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LG트윈스였기 때문에, 강철민(혹은 강철민에서 박기남을 뺀) 이상의, 투수를 제시했다면, 김상현은 다른 구단의 선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상현의 가치, 진가를 알아본 구단은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2008년까지의 김상현을 보고, 2008년과 전혀 다른 선수인 2009년 김상현을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요구일지도 모릅니다.




5. 김상현의 트레이드와 맹활약은 이용규 부상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용규 부상이 신인왕 후보 안치홍과 MVP 후보 김상현, 페넌트레이스 1위 기아 타이거즈로 이어졌는지도 모릅니다.


2009년 3번째 경기였던 4월 7일 SK와이번스 전에서 기아 타이거즈 조범현 감독은 5년 만의 선발 3루수 이종범이라는 파격적인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공격력 강화를 위해, 장성호, 최희섭, 이재주, 이종범을 모두 쓰기 위해서, 우익수 이종범을 3루수로, 좌익수 나지완을 우익수로, 1루수 장성호를 좌익수로 선발 출장시킨 것입니다.

2009년 4월 7일 기아 타이거즈 조범현 감독의 선발 라인업은, 1번 타자 중견수 이용규, 2번 타자 3루수 이종범, 3번 타자 우익수 나지완, 4번 타자 1루수 최희섭, 5번 타자 지명타자 이재주, 6번 타자 좌익수 장성호, 7번 타자 유격수 이현곤, 8번 타자 포수 김상훈, 9번 타자 2루수 김종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아 타이거즈 조범현 감독의 파격적인 라인업의 유효기간은 불과 1시간이었습니다.

4회초 SK와이번스 공격에서 기아 타이거즈 이용규가 외야 점프 캐치를 시도하다 펜스에 부딪혀 오른쪽 복숭아뼈 골절상(6주 진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4회초까지 3루수를 보던 이종범이 중견수로 수비위치를 옮겼고, 대주자로만 나와 한 타석의 기회도 얻지 못했던 안치홍이 3루수로 들어가 2타수 1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중견수 이용규의 부상 이후 이종범은, 단 1이닝동안 1루 수비를 본 것을 제외하고는 외야 수비를 전담했고, ‘3루수 이종범’은 단 1/3이닝도 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견수 이용규의 부상은, ‘3루수 이종범’ 카드를 소멸시켰고, 임시로 3루수로 들어가 뛰어난 활약을 한 안치홍은 주전 2루수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당초 3루수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 홍세완의 복귀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2군 리그를 정복했으며 1군에서도 어느 정도의 힘과 장타력은 보여줬던 30살 유망주 3루수 김상현과, 수비와 주루가 뛰어난 훌륭한 백업 3루수 박기남은, 충분히 매력적인 카드였습니다.

톱타자 이용규의 부상으로 공격력이 더욱 약해진 상황에서 공격력 강화가 절실했던 점, 구톰슨, 로페즈, 양현종, 윤석민, 서재응, 곽정철, 이대진 등 화려한 선발투수진을 자랑하는 기아 타이거즈에서 부상복귀 시점이 물음표인 강철민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 투수진 강화가 시급한 LG트윈스에 비해 두산 베어스 등 다른 팀들은 요구조건이 강경했다는 점 모두 기아 타이거즈가 트레이드를 한 이유였습니다.




6. 김상현, 박기남의 트레이드로 기아 타이거즈는 트레이드 시장에서 퇴장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야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트레이드 시장의 약자로서의 약팀 기아 타이거즈는 퇴장하고,

트레이드 시장의 몇 안 되는, 그래서 투수의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도, 마음에 맞지 않으면 팔지 않을 수도 있는 트레이드 시장의 강자로서의 강팀 기아 타이거즈가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가장 크게 낙담한 팀은, 두산 베어스였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의 전력에 맞춘 롯데 자이언츠의 홍성흔 보상선수 명단에서 향후 트레이드를 생각하고 주전 유격수로 쓸 수 있는 내야수 이원석을 선택했습니다.


2006년까지 뛰어난 활약을 한 후 상무에 입대해 2009년 복귀한 손시헌

(2006년 126경기 15실책 404타수 타율 0.267, 출루율 0.339, 장타력 0.342, OPS 0.681),


2007년, 2008년 유격수로 뛰어난 활약을 한 이대수

(2008년 90경기 12실책 213타수 타율 0.282, 출루율 0.345, 장타력 0.380, OPS 0.725),


2008년 유격수로 뛰어난 활약을 한 김재호에

(2008년 112경기 14실책 261타수 타율 0.249, 출루율 0.318, 장타력 0.330, OPS 0.648),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유격수로 뛰어난 활약을 한 이원석이 두산 베어스의 (주전 유격수가 가능한) 내야수 명단에 추가된 것입니다.

(2008년 53경기 4실책 120타수 타율 0.275, 출루율 0.320, 장타력 0.333, OPS 0.654)


두산 베어스는 실제로 김상현, 박기남 대 강철민 트레이드 전까지 기아 타이거즈와 가장 뜨겁게 트레이드 논의를 했던 구단이었습니다.

유격수를 받는 기아 타이거즈의 전력이 급상승할 것을 두려워 한 두산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의 약점인 선발투수 부족과 좌완투수 부족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카드, 양현종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기아 타이거즈로서는 거의 유일한 풀타임 좌완투수이자 선발투수로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양현종을 주는 선택을 하기 힘들었고, 트레이드는 번번이 불발되었습니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의 입장에서, 이용규 부상과 홍세완의 복귀 지연, 예상보다도 나쁜 공격력, 예상보다도 뛰어난 투수력 등 기아 타이거즈가 투수를 주고 내야수를 받을 트레이드 필요성이 커졌다고 판단할 무렵, (LG트윈스와 김상현, 박기남 대 강철민 트레이드를 한) 기아 타이거즈는 보다 진전된 트레이드 카드 대신에 트레이드 협상의 완성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LG트윈스와의 김상현, 박기남 대 강철민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가 원하는 투수진의 여력이 가장 많았던, 3루수, 유격수 등 내야수 수요자로 가장 많이 부각되었던, 기아 타이거즈가 트레이드에 조급할 필요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두산 베어스로서는, 홍성흔의 보상선수로 선택한 이원석이 2009년 주로 1루와 3루를 오가며 98경기 306타석 타율 0.268, 8홈런 38타점, 출루율 0.324, 장타율 0.428, OPS 0.751의 괜찮은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2007년, 2008년 사실상의 주전 유격수로 맹활약한, 2009년에도 주전 유격수로 뛰어난 활약을 할 수 있는, 그 만큼 트레이드 가치가 높은 이대수가 2009년 불과 62타석의 기회밖에 얻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것입니다.

두산 베어스가 이대수 등 여유 있는 내야수를 트레이드해, 양현종이 아니더라도 1군 투입이 충분한 투수를 받았다면, 두산 베어스가 세네뇨, 니코스키의 외국인 투수진 중 1명 대신에 디아즈(2009년 62경기 15홈런 OPS 0.874를 기록하고 방출된 한화 이글스 우익수) 등 외국인 타자를 영입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7. 토네이도가 된 김상현 나비효과가 2009년 프로야구를 삼킨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2009년 김상현의 기량이 한 시즌만의 것이 아니라면, 김상현 나비효과는 2010년부터의 프로야구 역시 삼킬 가능성도 상당합니다.

김상현을 트레이드 해 온 기아 타이거즈는, 김상현을 트레이드 한 LG트윈스를 상대로 13승 1무 2패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상현을 트레이드 해 온 기아 타이거즈는 2002년 9월 12일 이후 7년 만에 1위를 하고 있고, 김상현을 트레이드 한 LG트윈스는 2002년 준우승 이후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매우 유력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기아 타이거즈 조범현 감독, LG트윈스 김재박 감독은 모두 두 달 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김상현 나비효과는,

이미 재계약합의를한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 외에도 4명의 감독(기아 타이거즈 조범현 감독, LG트윈스 김재박 감독, 롯데 자이언츠 로이스터 감독,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의 재계약이 걸린 2009년 시즌 순위에 영향을 준 것만으로도,

4팀의 감독 재계약, 해임에 영향을 준 것만으로도,

이미 2010년부터의 프로야구 역시 삼켰는지도 모릅니다.

(스탯티즈 기록 참조)

Posted by 파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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